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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번 버스를 아시나요

기사승인 2018.08.24  17: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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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한숙 /거제스토리텔링협회 회장

최근 삶을 놓고 죽음을 택한 사람이 있다. 그는 노동운동가로서 살아생전 약자들의 권익보호에 앞장섰다. 소외계층의 설움을 헤아리고 이들의 존재감을 위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는 한순간 부조리한 현실의 덫에 걸려 삶을 통째로 놓아버렸다. 자신의 모순된 삶의 단면을 확인하고 항변은커녕 묵언수행을 하듯 묵묵히 세상을 떠난 것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가 남기고 산 삶의 아이러니를 본다. 살아있는 양심의 법으로 고심한 나머지 그만 삶을 놓고 저리로 간 것이다. 이보다 더한 일도 어물어물 덮어지는 세상인데, 그 자신의 양심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던 모양새다. 하지만 삶도 죽음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지경일지라도 그 자신의 삶만큼은 스스로 놓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뒤늦게야 나는 켜켜이 쌓여있는 그의 어록을 들춘다. 못 다한 삶의 진실 때문이다. 걸쭉한 입담과 함께 그 특유의 촌철살인적 비유는 가히 압권이다. 해학과 풍자를 내보인 채 구구절절 삶의 진실을 노래한다. 이는 보이는 데도 보이지 않고, 들리는 데도 들리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삶의 절규이다. 그 중에서도 <6411번 버스를 아시나요>라는 어록만큼은 반복적으로 재생한다. 감동 그 자체로서 삶의 간절함이 뼛속까지 사무치는 까닭이다.  

하지만 어찌하랴. 부끄럽게도 나는 그가 언급한 6411번 버스를 알지 못한다. 새벽 4시마다 출발한 그 버스 승객들이 언제나 같은 사람들로 차고 넘친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시내버스임에도 그 안에서는 지정된 좌석인 양 누가 어디에서 타고 어디에서 내리는지 알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지 못한다. 강남의 높고 높은 빌딩가를 청소하는 50,60대 아주머니들이, 새벽마다 그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는, 사실도 알 리 없다. 미화원으로 불리는 그들의 봉급이 고작 85만원이라는, 사실 또한 알 리 없다. 아침마다 반질반질한 빌딩으로 출근하는 자식 같은 직장인들이 그들의 존재감을 알 리는 더더욱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회찬, 그는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들의 존재감은 물론, 6411번 버스 승객들의 설움도 알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그의 삶의 흔적은 그가 떠나고서도 반복적으로 재생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안락을 위해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투명인간, 즉 소외된 사람들의 존재감을 위한 삶이었다. 이는 노동운동가로 시작한 그가 종내 정치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그러니만큼 그의 죽음으로 인한 사회적 파장도 적지 않다. 이는 돈의 위력을 논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알량한 돈의 잣대로는 결코 논할 수 없는 것이 사람임을 증언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 사회는 여전히 진실공방이 한창이다. 말, 말들이 무성한 가운데 진실을 가려내기 위한 움직임이 올 여름 폭염만큼이나 뜨겁다. 여배우스캔들, 드루킹 댓글조작, 미투폭로, 심지어는 이런 사회를 정화시켜야 할 종교지도자까지도 권력분쟁에 휩싸인 채 잠잠할 날이 없다. 누릴 만큼 누린 권력임에도 저마다 권력 맛에 길들여진 채 안주하려는 모양새다.    

이런 사회상을 지켜보는 우리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들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는 경우도 있고, 물증이 있어도 그것이 결정적인 증거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어도 풀 수 없는 문제인 양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진실은 습관처럼 다시 수면 아래로 잠식되기 마련이다. 

정녕 누구를 위한 공방인가. 진실공방전에 진실은 없고 돈과 권력의 위력만 보이는 형국이니, 우리사회 투명인간의 한숨은 나날이 깊어만 간다. 정녕 법리적인 해석에 치우쳐 최소한의 양심과 도덕까지도 사라지는 그런 사회가 되어도 좋다는 말인가. 노회찬의 촌철살인 같은 한방의 위력이 못내 그리워지는 이유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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