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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버섯 향’에 살짝 취하고 ‘장사의 향기’에 만취하다

기사승인 2018.10.08  08: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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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씨름과 함께한 즐거운 추억여행 13

지난 9월 21일부터 26일까지 6일간 경북 문경에서 열린 ‘IBK기업은행 2018 추석장사씨름대회’ 참가를 위해 문경에 다녀왔다. 9월 23일, 거제시청씨름단 윤경호 감독을 비롯한 선수 5명과 함께 문경으로 가는 도중에 청송에 들렀다. 유년시절 윤 감독과 씨름선수생활을 했던 친구를 만나보기 위해서다. 

청송으로 가는 길은 첩첩산중이다. 청송은 경상북도 중동부에 위치하고 낙동정맥의 중심에 있다. 태고의 비경을 간직한 국립공원 주왕산과 주산지, 피나무제, 얼음골 등 가는 곳마다 명승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청송을 찾아가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다. 기찻길과 고속도로조차 지나지 않는 전국의 몇 안 되는 군(郡) 지역으로 사방으로 넘어야 할 고갯길이 있어 교통의 오지인 것이다. 

대구에서 영천을 거쳐 청송으로 가는 길은 노귀재를 거치고, 포항에서는 꼭두병재를 거쳐 삼자현재를 넘어야 청송으로 올 수 있다. 우리 일행은 거제대교에서 경주IC를 빠져나와 황장재를 넘어왔다. 사람들은 그야말로 비행기와 기차를 타고 먼 길을 와서는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에 몇 번이고 졸다가 깨기를 거듭하면서 천신만고 끝에 청송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자연생태가 가장 잘 보전된 천혜의 자원이 원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장점이기도 하다. 

나는 황장재의 수려한 산세를 감상하면서 어릴 적 장날에 대한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밀양 산골 촌놈 출신인 나는 학교에서 보다 장터에서 배운 것이 더 많았다. 나는 장터에서 벌어지는 속임수, 흥정, 폭력 그리고 화해, 미움과 배려, 감동과 질투 따위의 인간사들이 틀에 박힌 학교 교육보다 나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했다. 나를 자극하는 어른들의 세계를 엿보기 시작하면서 더 넓은 세상이 산골마을 밖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많은 여행을 했었고 그 여행에서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터구경과 지칠 줄 모르는 여행이 나를 여행칼럼니스트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청송읍에 도착해 보니 방광산 자락에 자리해서 그런지 눈이 시원하고 공기가 정말 좋아 상쾌한 호흡을 이어갈 수 있었다. 때마침 산새들의 노래 소리에 귀 까지 맑아지는 곳이었다. 이날 오후 2시, 청송농원(010-8767-2887)을 운영하는 윤영상 대표가 송이버섯 수확철인 바쁜 와중에도 우리 선수단을 청송군 청송읍 망미정 청송농원으로 안내했다.

우리 일행들이 차에서 내리고 있는데 낯익은 윤영상 대표의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들려온다. “내 친구 경호가 이끄는 거제시청여자씨름단의 장사 탄생을 기원하면서 새벽에 채취한 송이버섯입니더~ 그리고 식탁에 놓인 갖은 야채는 지 어무이가 손수 장만 한 김니더, 마음껏 드시이소~”  그러자 고된 훈련으로 허기진 우리 선수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울린다. “와~고맙습니다.” 

윤 대표는 가을 한 철 산중생활을 한단다. 1년 농사나 다름없는 가을 보물이 이 때만 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산삼보다 귀하다는 송이버섯! 송이는 예부터 채소들 가운데 신선의 품격이라고 불릴 만큼 가을철 한 철 40여 일 정도, 20년 이상 된 소나무 밑에서만 나고 맛은 물론 약효도 좋아 ‘가을 산의 보물’이라 불린다. 이날 맛본 송이버섯요리는 떡갈나무 잎에 송이를 통째로 넣어 구운 송이의 쫄깃한 식감에 불향까지 더해진 송이구이와 송이버섯과 상황버섯을 곁들여 토종닭과 함께 끓인 송이버섯 백숙. 그리고 생으로 고추장에 무친 송이고추장지는 그야말로 신선의 맛. 한 철 고생도 잊게 한다는 그 맛에 흠뻑 취하고 말았다.  

예선전이 있던 날인 25일, 점심시간에 윤 대표가 송이버섯을 한 박스 들고 문경씨름시합장을 다시 찾았다. 송이버섯 먹고 힘내라고..... 예로부터 경북 청송은 ‘울면서 왔다가 울면서 가는 고장’이라는 말이 있다. 올 때는 눈앞이 캄캄해서 울고 갈 때는 너무 아쉬워서 운다는 뜻이니 드러난 것과는 달리 감춰진 매력이 많은 고장임이 실감난다. 문경실내체육관. 경기장 한켠에 씨름인과 씨름 팬들의 간절한 바람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바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등재’였다.

대회 마지막날인 26일 오전 12시, 무궁화급 이다현 선수는 이번 대회 압권으로 꼽힌 무궁화급 라이벌전에서 지난 단오대회 우승자인 안산시청 소속 최희화 선수와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이다현이 주특기인 들배지기로 먼저 첫판을 따냈고 최희화가 뿌리치기로 반격에 성공했다. 라이벌간의 대결답게 마지막 판에서 팽팽한 기 싸움이 이어진 가운데 경고 하나로 수세에 몰린 이다현이 총공세 끝에 승부를 마무리 했다. 이다현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무궁화장사 등극을 기뻐했다.

이날 시합장에 나타난 이다현의 아버지는 부산광명고등학교 체육교사로 재직 중인 이대우(57) 씨. 1983년 한라장사 결승까지 올라가 당대의 최고의 스타 이만기와 당당히 맞대결을 펼쳤던 스타프로선수였다. 혈통은 못 속이는가 보다.  

이다현 선수는“저는 초중학교 시절 곧잘 운동을 잘 하긴 했지만 여고시절 상위권 성적을 내고 있었던 터라 고등학교시절 운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씨름 한번 해 볼래? 씨름대회에 참가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놀라운 것은 그녀가 씨름에 입문한지 불과 6개월 만에 당시 무궁화대회우승을 도맡아 무궁화급의 ‘지존’으로 통하는 박미정을 8강에서 들배지기로 2-0으로 눌러 보는 이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여고 3학년 때는 무궁화장사를 차지해 파란을 일으키며 스포츠신문을 장식했다. 이후 구례반달곰씨름단에서 실업팀 선수생활을 해 오다 올해 초 거제시청에 입단한 이다현 선수는 ‘구례장사대회무궁화장사 7연패’의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명실상부 최고의 여자씨름선수다. 

부친과 함께 포즈를 취한 이다현 선수

이번 나들이는 앞서 들른 청송농장에서 맛본 향토음식의 맛과 송이버섯의 향기에 취하고, 추석날 문경실내체육관에서 열리고 있는 2018추석장사씨름대회가 문경의 자랑거리이자 스포츠의 메카임을 실감나게 하는 대회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뭐니뭐니해도 이다현 선수의 무궁화장사 등극에 보람찼다. 

글·사진: 손영민 /꿈의 바닷길로 떠나는 거제도여행저자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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