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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맞이하자

기사승인 2018.10.19  15: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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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일 /前 건강보험공단 거제지사장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죽기 마련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준비 없이 허무한 죽음을 맞는 것보다는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미리 준비된 죽음을 맞이한다는 각오로 살아가면 하루하루, 한순간의 삶들이 고귀해지지 않을까? 나는 매일 눈을 뜨면 내가 숨 쉬고 살아있음을 기뻐하고 이 기적 같은 하루를 어떻게 최선을 다할지 구상한다. 당연히 허투루 보내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의미 있는 하루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다.

보람된 삶, 내일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경제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내면가치를 꾸준히 연마하고 육체적 건강도 지켜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나는 매순간, 인생을 마감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면서 철저히 지켜나가는 원칙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가족이나 사회생활에서 사람과의 갈등을 피하는 일이다. 이해와 인내로 어떠한 갈등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전혀 예기치 못한 갈등에 휘말리면 굉장히 피곤하다. 일과에 지장을 초래하고 시간낭비도 엄청나지만 정신적 고통도 심하다.

내가 최근 법원조정위원을 하면서 몇 번 조정에 참여했는데 가족이나 지인들 사이에서 금전적 갈등관계에 얽힌 소송이 거의 대부분을 차기하고 있어 금전거래가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 절감한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돈이 거짓말 한다’는 말이 있다. 금전적인 문제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면 삶을 포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항상 타인의 장점을 보면서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스러우나 사람과의 다양한 갈등만큼은 철저히 피해야 웰빙(well-being)할 수 있다. 웰빙은 곧 웰다잉(well-dying)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루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했으면 후회는 하지말자. 죽음을 앞두고 후회를 적게 하는 것이 좋은 죽음이라 한다. 일상에서 간혹 나쁜 결과가 나오더라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는 지혜로움이 필요하다.

또한 용서(容恕)하면서 살자. 그래야만 기분 좋은 평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물론 용서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순간순간 생을 마감한다고 생각하면 용서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리고 사랑하면서 살자. 사랑이야 말로 최고의 선(善)이다. 남녀의 사랑도 아름답지만 가족, 이웃, 동료는 물론이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사는 것은 가치 있고 우아한 삶이다.

또한 죽음이 나에게 닥친다면 모든 것을 운명(運命)으로 받아들이고 자연(自然)으로 돌아갈 준비를 항상 해두자. 최근 우리사회는 삶의 질(質)만큼이나 죽음의 질도 중요해지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시행된 웰다잉법의 정식명칭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어 「존엄한 죽음」이 가능해졌다. 연명의료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투여 등 4가지 의료행위를 말한다.

이를 중단하기 위해선 환자본인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직접 작성하면 된다. 보건복지부와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 따르면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이달 3일까지 회복가능성이 없어 연명의료를 시도하지 않거나 중단한 환자는 2만 8백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법에 따라 말기환자들은 임종을 앞두고 연명의료계획서를 쓸 수 있으며 건강한 사람이라도 미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써서 만일의 경우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기록으로 남겨둘 수 있다.

법이 시행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2만 명이상이 연명의료중단을 택한 것은 병실에서 생존을 이어가는 대신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3대가 같이 살면서 자식들에게 노후를 의지하는 노인들이 많았으나 산업사회로 들어서고 가족규모가 작아지면서 국가가 노인을 돌보는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노인 분들이 요양원, 중환자실, 영안실로 이어지는 죽음의 코스를 주변에서 많이 봐왔기 때문에 노후는 물론 죽음도 자신이 맞이해야 한다는 강한 인식이 생겼다.

아무튼 갑작스런 죽음이든 병으로 목숨을 잃거나 천수를 누리든 좋은 죽음을 맞이하려고 항상 노력하자.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여 ‘잘 살았다’며 웃으면서 떠나보자. 마지막으로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을 소개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 손에 손을 잡고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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