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분노의 포도

기사승인 2018.11.23  14:52:55

공유
default_news_ad1

- 양재성 /전 거제문인협회장

   

날씨가 추워진다. 미국의 소설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떠오른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시기에 심한 가난에 쪼들리던 조드 일가는 물자가 풍부하다는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기로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그들이 찾아간 캘리포니아 역시 심한 가난과 절박한 상황으로 구직난이 극심했다. 당시 미국의 대공황은 세계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다른 서방국가들 역시 경제적 타격으로 실직자들이 넘쳐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돈을 벌려면 무엇이든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막상 일자리가 없다. 게다가 공급과 수요의 법칙이 적용되어 일하겠다는 사람이 많으니 노동력의 값어치가 떨어졌다. 소수의 지주가 대부분의 땅을 소유하고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죽도록 일하고도 생계유지조차 힘들다. 대자본의 독식구조 때문에 소자본가나 자영업자가 설 자리는 점차 사라지고 결국 노동자에서 실직자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데 지주들의 농장에서 탐스럽게 익어가는 포도는 노동자들의 분노를 자아낸다. 이후 뉴딜정책이 등장하게 된다.

우리사회도 근자에 분노로 염증을 앓고 있다. 이는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 방화, 살인 등의 ‘분노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분노범죄는 대상도 무차별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매우 잔인하다.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 부당함, 좌절감, 무력감 등이 분노와 폭력으로 분출된 형태이다. 혹자는 사회부적응 현상으로 ‘분노조절장애’로 설명하기도 한다. 물론 강자는 제쳐두고 약자 앞에서만 분노를 표출하는 갑질과는 다르다. 그러한 분노를 유발케 하는 요인들은 우리사회에 널려 있다.

금수저 흙수저로 비견되는 세습적 신분구조는 가난한 청년들을 분노와 박탈감에 빠뜨렸다. 현행 사회제도 하에서는 신분상승의 사다리나 돌파구가 사라졌다고 느낀다. 당연히 결혼과 출산은 기피할 수밖에 없다. 헐벗던 시대에 태어나 부모와 가족을 부양하며 억척스레 살아왔고, 자칭 중산층이라 자위하던 베이비부머 세대도 난리다. 노후대책으로 어렵사리 마련한 부동산은 각종 조세 공과금 탓에 없느니만 못하다는 자조가 팽배하다.

서울이나 지방을 불문하고 주택 유무와 관계없이 집값 스트레스는 심각하다. 집값이 상승해도 실질적인 이득이 없는 1주택 소유자들은 세금걱정이 앞선다. 내 집 마련은 꿈조차 꿀 수 없는 무주택 세대들의 절망감은 극에 달했다. 지방은 집값 폭락으로 온통 아우성이고 건설경기와 부동산시장은 대책 없이 얼어붙었다. 자영업자들은 섣부른 최저임금제와 불황을 견디다 못해 폐업이 속출한다. 기업들은 문을 걸어 잠갔고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다. 밑 빠진 독 같은 국민연금은 우려를 넘어 분노케 하고 있다.

삶이 점점 힘겹고 피곤하다. 끝없이 추락하는 경기에 정책마저 심히 우려스럽다. 분노하는 사회현상에 침묵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침묵의 나선 이론’이 있다. 특정한 의견이 다수의 사람들에 의하여 여론이 형성되면, 반대의견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은 고립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침묵한다는 것이다.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다.

모든 문제의 출발점은 경제요, 답은 정치다. 정치는 이유를 막론하고 경제를 살려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존재이유이자 책무이다. 매스컴에서는 온통 단풍철이라고 호들갑이지만 왠지 심드렁하다. 이래저래 스산한 시절 탓인가. 태평성대 혹은 고복격양이란 말이 부쩍 생각나는 요즘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