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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닌데

기사승인 2018.12.14  12:5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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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지영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S여행사 LA사옥 앞에서 차에 올랐다. 미(美)서부행 고객인 동승자들은 인근 카운티 내에 사는 이민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가족 방문 차 왔다가 여행길에 오른 나 같은 경우는 드물고, 한국에서 직항으로 들어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민자 중에 5인 가족이 있었다. 버스좌석 배치 상, 이 중 한 명(맏언니)이 내 짝이 되었다. 노인은 오랜만에 두 동생 내외와 여행을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형제자매가 9명이며, 70년대 앞서거니 뒤서거니 모두 미국에 왔고, 주(州) 곳곳에 사는 자손들이 모이면 60명이 넘는다고, 체화된 모국어로 자랑을 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첫날 관광 마무리를 하고, 다음 일정인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버스가 밤길을 달렸다. 목적지에 가까운 오클랜드에서 여장을 풀고, 나는 노인과 자연스레 한 방을 썼다. 노인은 그 도시에 사는 딸이 호텔로 오고 있다면서 늦은 밤에 로비로 내려갔다. 다음날 노인에게 ‘딸과 즐거운 시간 보냈느냐’고 인사를 건넸다.   

노인의 응답이 의외였다. “1층 카페에 가족이 모였는데, 그 자리에서 여동생 내외가 크게 다퉜다. 한국 여자 5인방이 원인 제공자”라고 했다. 어제 차가 잠시 아울렛 앞에 섰을 때 시선을 끌던 여인들이었다. 관광버스 승객들은 장거리 이동시에는 밀린 잠을 보충하거나 가이드 설명에 집중하거나 풍경을 감상하거나 한다. 평소에도 말수적은 여동생 남편이 뒷좌석 승객들 수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이다. 들어보니 다툼은 내외가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었다. 
“좀 조용히들 하라고 제부가 한 마디 했는데, 그 여자들이 글쎄, 할아버지 너무 까칠하시네요 하더라지 뭐예요” 

그 일이 못마땅했던 아내가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 쏘아붙였고,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들에게는 질책이 필요하다”고 남편도 화를 냈다. 그 바람에 오붓한 가족 시간을 망쳤다고 했다. 다음날부터 그 부부는 버스에서도, 식사 시간에도, 자유 시간에도 남처럼 대했다. 떨어져 앉거나 걷거나 식사를 했다. 몰랐으면 모르지, 이유를 알게 된 나는 신경이 쓰였다. 

버스가 ‘트윈 픽스’ 전망대에 오른 저녁이었다 일몰 명소답게 샌프란시스코 석양이 늦가을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장엄하였다. 숱한 인생의 상처를 위무하듯 평온하고 감사한 빛이었다. 카메라 셔터 터지는 소리, 금문교 쪽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심장까지 닿는 느낌이었다. 그때 한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그 한국 여성 5인방이었다. 

그들은 일렬횡대로 포스를 취하여 사진을 찍으면서 양팔을 높이 치켜들고 ‘랄랄 랄랄 랄라랄~’을 합창했다. 어릴 적 운동회 날 응원하던, 딱 그 모습이었다. 외국인들은 의아한 표정을 짓고, 그 진경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나는 노부부를 슬쩍 보았다. 남편은 말없이 도시를 내려다보고, 아내는 지는 해 쪽으로 등 돌린 상태였다. 7미터 정도 간격을 둔 채 외면하고 있었다. 부부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한 곳을 봐야 한다는데, 먼발치에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부부 사이가 노을 속에서 짠했다. 

마지막 날 버스는 한국행 비행기를 탈 여자들을 인근 공항에 내려주었다. 몇 시간 후, 버스에서 먼저 하차 하던 나는, 출발지(종점)에서 내릴 그 가족에게 인사를 했다. 따로 앉아있던 노부부는 여전히 어둔 얼굴로 시큰둥하게 인사를 받았다. 

마중 나온 아들이, 여행 좋았느냐고 물었다. ‘그래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진심이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목초지, 사막, 아몬드, 포도밭... ‘광활하다’ ‘아득하다’ 따위의 진부한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대륙이었다. 자연 원형 보존에 최선을 다하는 나라, 독특한 분위기로 개성을 자아내던 도시,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갔다 왔으니 충분히 보람 있었다. 그런데 개운하지 않았다. 노부부가 눈앞에 밟혔다. 

부부에게는 의미있는 여행이었다. 남편의 위암 수술 완치기념으로 아내는 ‘걷기보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영감을 꼬드겨 떠난 길’이었다. 장거리 운전이 부담스러워 패키지로 했는데, 예상 밖의 난적을 만난 셈이었다. 미국여행 계(契)를 모아 왔다는 다섯 명의 초등학교 동창, 그녀들은 중년답게 거리낌이 없었다. 공공장소 예절이 습관화된 한국계 미국노인, 남의 일에 간섭 말라는 그의 아내, 그 사이에 낀 가족은 불편했다. 사정을 알 리 없는 여인들은 저들만의 시간 속에서 신나게 떠들고 마시고, 입을 열었다. 자유방임적인 모양새였다. 이 경우를 손익계산 하자면 노부부 쪽이 손해로 보였다. 서로를 이해하고 챙겨주는 애틋한 부부애를 못 본 나도 마냥 유쾌하지 않았다.

기실 여행지에서 남편과 다툰 적이 나도 있다. 훗날 생각해보니 왜 싸웠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좋은 것을, 맛난 것을 공유하기 위해 벼루고 갔다가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다보니 풍경은 밖에 두고, 속에 상처만 남긴 채 돌아왔었다. 다툼의 원인은 ‘밖’(타인)이 아닌 ‘안’(나)에게 있다는 걸 살면서 깨달았다. 

석양 일몰이 유난히 붉은 세밑이다. 스쳐지나간 인연이지만 그 부부의 화해 소식을 듣고 싶다. 지나고 보면, 다 아무 일도 아닌데...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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