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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살맛 나는 세상이었으면

기사승인 2018.12.28  14:5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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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문석 /한국시인협회 회원

90년대 초에 신신애가 유행시켰던 노래 "세상은 요지경"에서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는 노래가 그 시대를 관통했습니다. 일종의 카타르시스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누가 봐도 가짜임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가짜인지 진짜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현상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현상을 걸러줄 매체들이 정권의 시녀 행세(?)를 하니 시민들은 거짓과 진실을 쉽게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가짜에 현혹당하지는 않습니다. 시민들은 순간의 현혹에 머물 뿐입니다. 이럼에도 이 행우(위)지를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유별난 행우지에 시민들이 이제 이골이 나 있습니다. 보수를 궤멸시켜야 한다는 여당 대표의 패악스런 언표에도 웃을 수 있습니다. 정치의 언어가 아름다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평화는 경제다’라는 플래카드가 길거리에 펄럭이는 것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어야 민주도 평화도 우리 앞에 서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간과(看過)한 이 슬로건의 생경함이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플래카드는 이내 내려지더군요. 성찰이나 성숙이 결여된 초랭이 방정 맞은 정치행태를 보면 신물이 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에 펴낸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2017년 1월)’에서 "완전히 새로운 나라, 지금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공정한 세상입니다. 적더라도 함께 나누는 세상, 배고프더라도 함께 먹는 세상, 억울한 세상이 없고, 안전한 세상입니다. 세상이 공평하다고 느낀다면 고통을 겪더라도 함께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면 보상받고, 국가 반역자라면 언제든 심판받는 국가의 정직성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성실하게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 이런 상식이 기초가 되는 나라를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른바 재조산하(再造山河)입니다. 시민들은 이런 나라가 되기를 갈망합니다.

지금 이 나라에 정의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 정부 초대 교육부장관 청문회를 보고 취임이 절대 불가할 줄 알았는데, 다음 장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상식이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시민은 안중에도 없고 정체성이 상실된 인물을 그 자리에 앉힙니다. 정의가 그들만의 정의입니까. 그 사람 참. 부끄러움은 인간에 있어서 최초의 도덕적 가치인데. 하물며 교육부장관이라니. 교육감들도 헷갈리는 인물이 많더군요. 

지금 대한민국은 노조의 나라입니까? 송호근의 ‘가 보지 않은 길’에서 현대차 노조를 취재하면서 "우리의 최초 언어는 무엇인가? 이익, 소득, 견제, 경쟁, 다섯 가지 방안은 바로 시민성을 배양하는 단계적 방법이다. 공적 쟁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시민정신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익에 매몰되는 인간이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노동조합은 약자들의 결사체로 알고 있습니다. 귀족노조와 세습노조는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공익을 추구해야 할 노조가 사익에 매몰되면 폭동을 유발시키는 것 아닐까요. 양대 노총이 청구서를 정부에다 내밀고 있습니다. 이른바 촛불혁명(?) 청구서랍니다. 그들만의 나라입니까? 안타깝습니다.

중앙이 이럴진대 지방이라고 뽀족한 수가 있나요. 시의원들의 정체성이 헷갈립니다. 그들은 사리(私利) 앞에 이념도 정체성도 내다버린지는 지자체가 시작될 때부터였으리라 짐작됩니다. 지금 시의회의장도 저간의 사정은 있겠지만 정체성을 허무는 일은 저어됩니다.
중앙정치판이 흐리니 할 말은 없습니다. 그들의 기시감(旣視感) 이니까요. 공익과 정의가 선결되어야 하는데. 연목구어(緣木求漁)가 아니었으면 합니다. 공익과 정의에는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앞서야 하겠지요.

지역에서 환경운동이나 이념에 매료된 분들도 시대상황을 제대로 알았으면 종겠습니다. 환경운동도 그 본연의 활동만 하면 시민들은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이념이 덧칠되면 본래의 취지가 소멸됩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한 폄훼의 시각은 어데(디에)서 발아되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중앙정부가 이승만은 뒤로하고 감상주의자 김구를 앞세운다고 덩달아 꼭두춤을 추는 것은 아닌지. 김구가 해방공간에서 한 일이 무엇인지도 살폈으면 합니다. 맹목은 무서운 것입니다.

친일문제에 있어서도 당시의 시대상황을 성찰한 후에 문제를 제기하면 생각이 교차할 것입니다. 편협된 사고의 위험성을 간과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당시 시대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시기 바랍니다.(윤치호의 일기‘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
해방공간과 6.25 전쟁에서 이승만 박사가 독립운동을 할 때부터 자유의 편에 서야 한다는 것을 내다봤다는 것입니다. 당시 세계적 시대 흐름을 정확히 읽었던 사람도 이승만입니다.(일본의 가면을 벗긴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인민공화국을 세우자는 세력과 대한민국을 세우자는 세력의 투쟁의 역사다. 인민공화국을 세우자는 사관이 해방전후사의 역사를 왜곡하고 계급투쟁을 통해 국민을 분열시키고, 북한의 만행을 감추는 방식으로 6.25전쟁사를 왜곡하고 있다.(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그 어둡고 어리둥절한 시절에 이승만 박사가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탈북자들의 얘기를 우리 현실에 반추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럼에도 이승만을 폄훼한다고 해서 엄연한 사실이 지워집니까? 거제에서 자행되고 있는 ‘성찰되지 않은 이념놀이’ 이제 걷어 내세요. 무엇이 시민을 위한 길인지.

김병일 선생(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은 우암이 쓴 포은의 신도비문 가운데 한구절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고 합니다.
"허물이 있는 가운데서도 마땅히 허물이 없는 것을 찾아야 하지, 허물이 없는데서 허물이 있는 것을 찾아서는 안된다(當於有過中求無過, 不當於無過中求有過)." 적폐청산의 광풍에 던지는 화두 같습니다.

너와 나 우리 모두 살맛나게 은악양선(隱惡揚善)의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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