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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거제에 사람이 살기 시작 했나

기사승인 2019.01.14  10: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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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의 재발견 - 거제의 석기시대(石器時代)

지역에 남아 있는 유적 및 유물을 짐작해 보면 거제도에 사람이 건너와 살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로 보인다.

신석기는 석기시대 중 구석기·중석기시대를 이어 나타난 마지막 단계다. 신석기시대는 인류가 처음으로 원시 농경과 목축에 의한 식량생산을 하게 되는 시기로 인류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시기로 구석기시대의 수렵·채집 경제를 벗어나, 농경이나 목축을 기반으로 안정된 정착생활이 시작됐다.

또 인류가 토기 및 간석기를 사용하고 직물 기술을 개발하는 등, 새로운 문화특성을 지니게 된 시기도 신석기시대다.

지금까지 거제지역에서 확인된 구석기시대 유물은 없다. 하지만 거제면 산달도, 남부면 대포, 일운면 공곶이와 내도, 장목면 이수도, 칠천도와 가조도 등 거제 본섬 주변 부속도서와 마주한 해안지역에 발견된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다양한 유물이 발견됐다.

거제지역에선 우리나라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인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해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 *겹아가리토기(二重口緣土器) 등 신석기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줄곧 인류가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또 신석기시대부터 거제라는 섬이 사람 살기 좋은 곳이었다는 사실과 일본지역과 직접 교류했다는 것까지 알려주고 있다.
거제지역에 남아 있는 신석기시대 유적?유물을 통해 역사기록 이전부터 거제섬에 살았던 이들의 숨결을 만나본다.

거제의 신석기 유적

산달도패총 = 거제도 부속섬 중 세 번째 큰 섬인 산달도는 산봉우리 세 개로 이뤄진 섬으로, 세 개의 산봉우리 가운데 서쪽 기슭에 산전(전등)마을이 있고 반대편인 동남쪽 기슭에 산후(후등)마을, 그리고 남쪽 봉우리 기슭에 실리마을이 있다.

산달도엔 2곳의 신석기 유적이 발견됐는데 전등패총과 후등패총이다. 거제면 법동리 산전마을 산10에 있는 전등패총은 지난 1970년 초 발견됐지만, 1982년 해안도로 공사 당시 대부분이 잘려나가고 지금은 흔적을 찾기 힘들다.

거제면 법동리 실리마을 181 인근에 있는 후등패총은 1972년과 1974년 부산대학교박물관이 지표조사를 통해 대략적인 유적 및 유물의 성격이 나타났지만, 이 또한 현재 수산물가공공장과 도로개설로 흔적을 찾기 힘들다.

이곳에서 발견된 패총은 길이 30m, 너비 15m 규모로 덧무늬, 압인문, 태선침선문토기는 물론 겹아가리 토기가 채집돼 신석기시대 기간 전반에 걸쳐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고 있다.

대포패총 = 남부면 저구리 대포마을 인근에 위치한 대포패총은 지난 1998년 경상대학교박물관의 지표조사를 통해 처음 발견됐고, 2002년 목포대학교 역사문화학부, 2006년 동아대박물관과 동아대학교 해양자원연구소가 실시한 지표조사를 통해 추가로 유적이 발견됐다.

대포패총 인근에는 근포 유물산포지 및 대포항 해안유적 등 신석기새대 유물이 다수 분포하고 있다.

거제지역에선 산달도패총이 발견되기 전까지 이렇다 할 신석기문화의 발견이 없었지만, 대포패총의 발견으로 지역 신석기문화를 새롭게 연구할 수 있게 됐다.

대포패총과 그 인근에선 많은 양의 덧무늬, 빗살무늬, 패각류가 발견됐고, 석제어망추, 패천, 석재편, 각종 동물뼈, 눌러찍기무늬, 겹아가리 토기 등이 확인됐다.

또 패총 내부에선 인간의 두개골편과 사슴뼈, 고래뼈, 어류뼈 및 굴과 조개로 만든 팔찌 등이 발견됐고, 패총 인근에는 생활유적이 분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도ㆍ공곶이ㆍ이수도 패총 = 일운면 내도패총과 공곶이패총에선 신석기 굴?조개더미와 돌도끼 흑요석이 출토되는 등 선사시대 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다. 두 곳 유적은 신석기시대 말부터 청동기시대에 이르는 유적이 발견되는 곳이다.

또 장목면 시방리 이수도패총은 지금은 방파제를 만들면서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신석기 전기에 해당하는 지두문토기와 단선문토기, 신석기 중기의 삼각집선문토기, 후기와 만기의 퇴화침선문과 겹아가리 토기가 발견됐다.

*덧무늬 토기(隆起文土器) = 융기문토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단계의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토기로 B.C 1만-7000년경 신석기시대 전기에 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덧무늬는 흙띠를 지그재그식으로 배열한 것과 돋은 평행선 바깥쪽에 팥알처럼 돋은점열을 한 줄씩 배치한 것 등이 있는데, 지그재그식 덧무늬가 붙은 토기는 대마도의 고시다카(越高) 유적에서도 발견돼 한?일 간 문화교류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알려졌다.

*겹아가리 토기(二重口緣土器) = 아가리 부분 바깥면에 일정한 폭의 점토띠를 덧붙이거나 성형할 때 점토띠 가장 윗단의 아래단 접합 흔적을 지우지 않고 선으로 남긴 토기로 신석기시대 후기∼청동기시대 전기에 만들어져 사용된 토기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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