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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를 향해 개가 짖는다

기사승인 2019.05.10  16:3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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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지영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앞서가던 개가 왁살스레 짖었다. 덩치 값 하는 카리스마였다. 미상불 개는 무엇인가를 알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앞서가던 주인이 목줄을 당기며 채근해도 소용없었다. 개의 안테나에 잡힌 건 폐비닐이었다.

사실 그 폐비닐을 먼저 본 쪽은 나다. 내가 걷기운동 시작하던, 몇 해 전부터 나뭇가지에 걸려있었다. 멀리서 까치 떼인 줄 알았다가 가까이 가서야 검은 비닐인 걸 알았다. 개는 후각 뿐 아니라 청각 기능도 뛰어난 동물이다. 사람은 2만 진동수를 들을 수 있지만 개는 10∼70만의 진동수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쓰레기의 정체가 개 본능에 딱 걸린 셈이다.

“너에게 배운다” 나는 개가 고마웠다. 누군가 치우겠지, 나에게 해(害) 안 되니까, 내가 그러고 말 때, 개는 문제 발견 즉시 공론화 했다. 그때가 지난 3월 초순이었다.

5월이 되면서 산책길은 온통 푸른빛이다. 건강증진에 힘쓰는 시민도 늘었다. 다양한 기구를 이용하여 근력을 만들고, 걷거나 뛰거나 하면서 체력을 다진다. 사람길과 자전거길 색깔이 달라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환경미화도 나무랄 데 없다. 갖가지 초목이 철철이 꽃을 피우는데, 요사이는 아카시아 망울이 터진다. 등나무 아치형 돔 아래로 흐드러졌던 보랏빛 바톤을 이어받은 상아빛이다. 향이 진해서 취할 것 같다. 냇물 위의 물오리, 못자리의 백로, 산책로의 운동객들이 조화를 이뤄 화폭 속 주인공이 된다.

그런데도 왜일까? 사람들의 인상이 밝지 않다. 주고받는 말을 들어보면 부정적 용어가 주류를 이룬다. 아들과 함께 운동 나온 노인은 ‘저 놈 취직되는 거 보고 죽어야 하는데’ 라고 한숨을 쉰다. 옆에 있던 중년 남자 입장은 되우 더하다. 그는 장사 몇 달 만에 거덜 난 노숙자라고 한다. 얕은 물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날마다 앉아있던 그 사람이었다. 곤궁한 서민의 언어는 평일 봄날 기류를 타고 삶의 하중을 흔들고 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더니, 산책로 쉼터는 이 말을 방증하는 곳이다. 태어난 김에 사는 이보다 죽지 못해 산다는 이들의 넋두리는 한바탕 농담처럼 허무할 뿐, 해결은 각자 몫이다. 답답한 사람들, 나도 이 중 1인이다.

국민은 언론을 통해서 사회를 듣고 보고 파악한다. 요사이는 이런 권리와 재미가 사라졌다. KBS1은 전국의 각 가정이 내는 시청료로 운영한다. 연간 징수하는 시청료는 약 6300억원 정도라고 한다. 이건 의무적으로 납부할 조세가 아닌데도 전기요금고지서를 통해 가져간다.

KBS가 공정성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개그맨 출신 궐자의 저급한 이념적 괴성(怪聲)을 고액으로 출연시킨다. 학자 출신 주관적 역사관이 주말 중심 시간대를 차지한다. 그는 ‘이승만’을 국립묘지에서 이장해야 한다거나, “전 국민이 일치단결해 신탁통치에 찬성했으면 분단도 없었을 것”이라며 “우리는 이 대통령 밑에서 신음하며 자유당 시절을 겪었고, 4·19혁명으로 그를 내쫓았다, 그는 역사에서 이미 파내어진 인물”이라고 쇠소리(鐵聲)를 냈다. 정가의 당파싸움으로 지쳐있는 국민들에게 공중파가 앞장서서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 길에서 놀던 나는 이상한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젊은 사내는 반공포스터, 철지난 대통령 후보 사진들이 붙인 벽보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동네 아저씨가 ‘당신 누구요?’ 하고 말을 걸자 잰 걸음으로 달아났다. 그는 내 눈에 영락없는 간첩이었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말하려다 그만 두었다. 간첩 신고해서 포상금을 타고 싶었지만 그러다 내가 먼저 죽을지 몰라 겁이 났다. 당시 간첩은 도깨비만큼 무서운 존재였으니까.

자당편은 맞고 상대편은 틀린 나라, 숱한 부정부패 의혹이 내로남불로 은폐되는 나라, 정치고 경제고 민주주의 기본이 없어진 나라,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던 60년대 시국 같다. 다양한 편의시설, 멋진 산책로 조경, 분위기 죽이는 야경, 이런 것들은 든든한 물적 토대가 받쳐줘야 설득력이 있다. 허기진 배(腹)위의 명품옷 같다면 블랙코미디에 지나지 않는다.

폐비닐은 미관만 해치는 게 아니라 고압 전신주에 닿으면 정전사고까지 일으킨다. 농수로, 논둑, 강변에 처박힌 것은 500년을 썩지 않고 산하의 토양을 오염시킬 것이다. 가지에 걸린 저 비닐은 더 보기 흉해진다. 강풍이 불면 ‘미친X 머리카락’처럼 헝클어져 소리를 낸다. 당장 걷어내야 할 형편인데 감히 엄두가 안 난다. 손이 안 닿기 때문이다.

닿을 수 없으니까 더 안타까운 나뭇가지 언저리에서 나는 슬프게 돌아선다. 그러나 나는 안다. 사계가 순환의 원리를 거역할 수 없듯이 쓰레기를 품은 허무한 아름다움도 늦가을까지가 유효기간이라는 걸. 낙엽이 지면 헐벗은 야산에 암 같은 적폐가 드러날 것이다. 그걸 사람이 안치우면 정직한 개가 또 짖어 줄 것임을. 개에 부끄러운 날들이다.

적폐청산 공약으로 세운 정권, KBS 시청료 적폐부터 청산하라! 근래 시청한 30분치는 제해도 좋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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