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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의 재발견 - 거제의 사라진 사찰들

기사승인 2019.05.17  18: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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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융성했던 거제의 불교문화와 폐사지(廢寺止)

계룡산

융성했던 거제의 불교문화와 폐사지(廢寺止)

거제지역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시기는 통일신라시대 즈음으로, 고려시대 불교문화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로 보인다.

전국문화재총람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의 금동아미타여래입상(金銅阿彌陀如來立像) 1구가 1968년 6월 18일에 발견돼(동부면 노자산 부춘리 일대)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돼 있고, 아양리 3층 석탑(대우조선해양 내, 경남도 문화재자료 제33호)도 고려초와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보이고 있다.

여기다 계룡산 남쪽 원효암과 정상에 있는 의상대, 둔덕면 산방산의 귀절암과 설매암, 일운면 북병산 인근 삼거리에 있었다는 고려 초기 은적암, 하청면 유계리 앵산 중턱에 있었던 북사 등의 흔적이 남아 거제지역에 오랫동안 불교가 왕성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계룡산 의상대(절터)

또 오량석조여래좌상이 있었던 각호사나 일운면 옥녀봉 자락 은적사, 아주동 승지산 은적사, 아주동 법률사, 덕포리 강망산 세오암, 하청면 북사터의 정수사, 거제면 옥산 금성 수정봉에 있던 수정암 등은 기록이나 구전으로 전하는 절들이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져, 조선시대 들어 점점 쇠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거제지역에 남아 있는 주요 불교문화재는 조선 중기에 폐찰 된 사등면 오량리 절골 각호사(角呼寺) 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 양식의 석조여래좌상(경남 유형문화재 제48호), 대우조선 내 있는 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 양식의 아양리 삼층석탑, 고려말~조선초 양식의 지세포리 석조약사여래좌상(경남 유형문화재 제455호),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세진암 목조여래삼존불(경남문화재자료 제325호), 혜양사 완호작 불화(경남문화재자료 제451호), 장흥사 지장보살시왕탱(경남유형문화재 제454호) 등이다.

대우조선해양 내 소공원에 있는 아양리 3층석탑

그러나 현재 거제지역에는 100년 이상 보존된 사찰조차 찾기조차 힘든 상태다. 지역에 현존하는 사찰 대부분은 해방 이후 새로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전통사찰에 등록된 절도 거제면의 ‘세진암’이 유일하다.

조선시대 ‘숭유억불책(崇儒抑佛策)’을 비롯해 산전수전 다 겪었을 거제의 폐사지(廢寺止)는 과거의 영화로움도 잊은 채 사람들 사이에서 전설로만 기억되고 있으며, 이제 그 기억의 조각 조차 희미한 상태다.

본지는 과거의 융성했던 거제의 불교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지역의 주요 ‘폐사지’를 소개하고 불황에 시름하는 거제의 경기회복을 기원한다.

앵산 하청 북사 터

동종과 함께 사라진 하청 북사 = 경상남도 기념물 제209호인 하청 북사는 언제 만들어졌고, 언제 없어졌다는 기록이 없다.

다만 지난 2012년 5월 거제시가 (재)삼강문화재단에 의뢰한 하청 북사지에 대한 기초조사 자료에 따르면 하청 북사는 최소 고려 중기 이전에 존재했고 조선 시대까지 명맥을 이어왔으며 4곳의 건물지와 돌탑, 민가터, 추정 경작지 등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청 북사 터에선 건물지와 고려 중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는데 고려 시대 하청 북사가 있었고, 이후 조선 시대에 같은 터에 정수사라는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청면 앵산 정수사 부도탑

하청 북사의 흔적은 바다 너머 일본에도 남아 있다. 1232년에 왜구가 약탈해 간 기록까지 버젓이 남겨 놓은 하청 북사 동종(銅鐘)이다. 이 동종은 일본 좌하현 혜월사(惠月寺)에 보관돼 일본 중요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는데, 고려 현종 17년 9월에 하청 북사의 종을 만들어 달았다는 내용과 1374년(공민왕 7년) 새긴 추기(追記)에 종을 약탈해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UNESCO 국제협약에 따르면 도난당하거나 불법반출된 문화재의 경우 반환하도록 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고, 지역과 정부는 반환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계룡산 의상대 위 장기바위(바둑바위)

계룡산 원효암과 의상대 = 계룡산에는 원효대사(617~686)가 기도했던 원효암(元曉庵)과 의상대사(625~702)가 수도했다고 알려진 의상대(義湘臺)가 남아 있다.

한국의 유명한 대다수의 사찰엔 원효나 의상에 대한 이야기 하나 정도는 다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불교계에 적잖은 영향력을 가진 두 사람의 일화는 유명하다. 두 사람이 당나라 유학길에 함께 올른 도중에 원효는 해골바가지의 물을 마신 뒤 크게 깨달아 되돌아오고 의상은 유학길을 이었다는 이야기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행적을 통해 신라 불교를 발전시켰다.

의상대에선 1950년대 중반 길이 15㎝~16㎝의 금동불상 하나가 고현에 거주하는 윤모 씨가 발견했다가 이후 관리 부주의로 분실했다고 전한다.

의상대 인근에는 의상대사가 수도를 하던 중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뒀다는 바둑바위(또는 장기바위), 참선을 했다는 참선바위와 불의문(佛儀門)바위, 남해의 용왕이 의상대사를 만나러 왔다가 거북이 모양의 돌이 됐다는 거북바위가 있다.

원효암은 조선시대 여지도서, 경상도읍지, 거제부읍지 등에 원래 사찰이 있었으나 폐사되고 없다는 기록으로 볼 때 이미 조선시대 이전에 사라진 절로 예상된다.

원효암은 의상대에서 고현 방향으로 70M 지점 대나무밭 인근 약수터 주변으로 두 곳 정도가 절터로 추정되고 있으며 주변은 대나무 죽순과 기와 조각이 자주 발견된다고 한다.

대우조선해양 내 소공원에 있는 아양리 3층석탑

아주동 법률사와 아양리 3층 석탑 = 통일 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에는 정책적으로, 또는 왕권 강화를 위해 불교를 장려했던 시기로 이 시대 불교유적은 곧 시대를 반영하는 척도로 쓰이곤 했다.

특히 통일 신라 시대 후반부터 지방 호족들이 사찰과 탑을 세우는 일이 빈번했는데 풍부한 해상 경제력과 농업 생산력을 기반으로 번성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주현에도 신라 시대부터 ‘법률사’라는 유명한 사찰이 있다.

법률사는 옥녀봉과 국사봉 사이에 있는 승지산(僧地山) 아래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 장흥사(長興寺) 인근으로 추측된다. 승지산이란 지명도 불교와 관련이 깊은 데다 탑골이란 지명도 불탑이 있는 골짜기란 뜻으로 불교유적과 연관이 깊다.

그러다 1935년께 탑골에서 밭을 갈던 농부(박학중 씨)가 석탑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 석탑이 경남도 문화재자료 제33호로 지정된 아양리 삼층석탑(鵝陽里 三層石塔)이다. 발견 직후 이 석탑은 아양리 마을 중간으로 통하던 길 위쪽에 세워뒀다가 지난 1973년 대우조선소가 들어오면서 이설이 불가피해져 현 위치인 대우조선해양 소공원으로 옮겨졌으며, 현재 거제시가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산방산에 있었다는 귀절암 추정지

절벽 위에 세워진 암자 ‘귀절암’과 둔덕면의 폐사지 = 둔덕면 지역은 고려시대에만 7개가 넘는 크고 작은 사찰이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산방산 중턱에는 고려시대 절터로 알려진 설매암터 인근에 삼심굴(석굴암)이 남아 있으며, 산방산 중턱 깎아지는 절벽 위에 만들어졌다는 귀절암도 고려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본지가 산방산에 옥굴을 조사하던 중 귀절암 인근에 흩어져 있는 토기 편 등을 전문가에게 의뢰한 결과 통일신라시대 유물이라는 의견을 냈다.

산방산 귀절암 추정지 인근에서 발견된 토기편

이 밖에 둔덕지역에는 둔덕기성 맞은편 우두봉 자락에 있었다는 견암사(見岩寺)와 이 사찰의 말사로 알려진 도정암(道正庵)과 견암(見庵)이 있었다(한국불교사원경제연구-이재창)고 전해지고 있다. (남부면 가라산 일대에 있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 등에 따르면 견암사는 667년(신라 문무왕 7년) 창건 당시 ‘고견사(古見寺)’로 기록돼 있으며 거제가 아닌 거창 지역에 만들어진 절이다. 그러다 1271년(고려 원종 2년) 고견사가 있던 거창 땅에 거제현이 옮겨지면서 ‘거제 견암사’라는 기록이 남게 됐으며, ‘거제 견암사’로 기록된 시기도 조선 건국 초부터 세종 6년까지다.

 

새로 만든 산방산 삼신굴(부처굴 또는 석굴암) 삼불, 산방산 석굴암은 경주의 석굴암과 달리 서쪽 방향에서 빛이 들어 온다.
산방산 삼신굴에 있던 원래 불상, 고려시대 양식으로 알려졌으며, 현재 심하게 훼손돼 새로 만든 삼신불로 가려놨다.
하청 북사 인근에서 발견된 토기편

참고자료 = <거제의 사찰을 찾아서(1998년·거제문화원)>, <아주동지·2013년>, <신협읍지·2006년>,<둔덕면지·2002년>, <巨濟·1990년>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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