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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雩南)도 적폐대상인가요

기사승인 2019.05.24  17:4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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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문석 /한국시인협회 회원

속담에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 나무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속담도 많습니다. 가마솥이 노구솥더러 밑이 검다 한다. 뒷간 기둥이 물방앗간 기둥을 더럽다 한다. 가재 뒷걸음이나 게 옆걸음이나. 숯이 검정 나무란다. 검둥개 돼지 흉본다. 진드기 아주까리 흉본다. 그을린 돼지가 달아맨 돼지 흉본다. 가마귀가 까치더러 검다 한다. 남의 흉 한 가지면 제 흉은 열 가지라 남의 흉은 앞에 차고 제 흉은 뒤에 찬다.

이외에도 비슷한 속담이 많습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유형의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정치 마당이 그렇습니다. 보편적인 시민들은 이념놀이에 신물을 냅니다. 깊이와 넓이도 빈약한 정치인들이 본능적인 영향력에 매몰되어 광분하는 것을 보면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앞섭니다. 학자들 가운데도 많습니다. 좌파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도 지배와 피지배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이 우리나라 이념 프레임입니다. 

이 시대는 좌파적 사고가 꼭 해방공간 시대상황 같습니다. 당시에는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사회주의가 탈출구처럼 보이던 시대였습니다. 이 시대는 그 시대와는 생판 다른 시대입니다. 어느 한 쪽으로 매몰되는 게 아이러니합니다. 피지배자 코스프레 같기도 합니다. 지배자로 등극했는데도 말입니다. 이러니 시민들은 피곤합니다.

공영방송 KBS에서 ‘도올 아인 오방간다’를 방영했습니다. 이 프로에서 도올이라는 사람이 서슴없이 이승만을 괴뢰(傀儡)라 하면서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도올이란 사람이 이승만에 대해서 얼마나 연구를 했기에 부관참시(部棺斬屍)나 진배없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을 수 있을까요?   

북한을 통치했던 김일성은 스탈린이 낙점해서 소련군과 함께 북한에 보냈습니다. 소련군 장교복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광화문 교보빌딩에 걸린 독립유공자가 그려진 걸개 그림에도 이승만이 빠졌다는 신문기사가 있었습니다. 임정 100주년을 기리는 10명이 그려진 그림이었습니다. 인물 선정은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정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회’가 했답니다. 이런다고 있는 역사가 지워집니까. 이승만이 임정에서 탄핵됐다고 뺐다는 것입니다. 그후 김구와 이승만의 관계를 잘 살폈더라면 이런 치졸한 짓은 하지 않았겠지요. 6.25와 이승만과 미국과의 관계, 대한민국 건국과정을 제대로 성찰했더라면...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2차 회의에서 대통령의 발언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정말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1946년 건국 이래 김일성 집단은 단 한 번도 대남 적화통일의 꿈을 접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대한민국을 지우려고 하는 끝없는 도발을. 6.25전쟁도 그가 기획했습니다. 스탈린과 모택동도 함께 동족상잔(同族相殘)이란 끔찍한 비극을 연출하지 않았습니까?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입니다. 어찌해 볼 수 없는 불변입니다. 북한 당국자들은 남침 의도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기형적인 전체주의 국가이기도 하고요.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공을 들이고 구애를 할 때 조금은 변화가 오지 않을까 기대를 했습니다.
이럼에도 오지랖이 넒다고 하지를 않나, 미사일을 다시 쏘지를 않나, 지금 나타나는 현상은 무엇입니까. 해방 후 김구와 김규식이 좌우합작을 위해 분투했지만 돌아 온 것은 무엇입니까. 남북연석회의를 위해 38선을 넘었지만 김일성에게 속은 것 밖에 더 있습니까?

이승만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에 행운이 찾아 왔을까요. 행운은 그냥 오는 경우는 드뭅니다. 행운이 작동할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승만은 대한제국 수립 직전 독립협회 때부터 활약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도 지낸 분입니다.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독립을 보장받는 데도 기여했습니다. 6.25전쟁 때는 한미동맹을 맺어 공산화의 길도 막아냈습니다. 해방공간의 좌우 이념 대립에서도 초지일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냈습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인 신탁통치에 대해 “찬탁은 합리적 판단, 반탁은 꼴통”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일제가 패망했는데도 5년간 더 신탁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안(案)에 대해 민중은 분노했습니다. 백범 김구를 비롯한 임정요인들도 앞장섰습니다. 박헌영의 공산당  따위 좌파는 머뭇거리다 1946년초 스탈린의 지시로 찬탁으로 돌아섰습니다. 박헌영은 6.25 전쟁 후 북한에서 미제 간첩죄로 몰려 재판도 없이 총살당했습니다.

요즘 학계에서 찬탁이 최선이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중국 공산화 이후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되었을 것입니다.

소련은 38선 이북만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에 친소 정권을 세우길 원했습니다. 스탈린은 1945년 9월에 김일성을 앞세워 북한에 단독 정부를 수립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로 해서 소련군이 진주한 북한에서 공산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미군은 소련의 조선반도 전체 점령을 우려해 38도선을 제의했습니다. 아직도 태평양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폭을 맞은 일본이 3일만 빨리 항복을 했더라면 소련이 참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대한민국은 분단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두 진영 이야기가 횡행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친일파 나라도 빨갱이 나라도 아닙니다. 부끄러운 부분이 있긴 했으나 공적부문에선 과거 극복 노력으로 그조차도 넘어섰습니다. 이제는 역사의 연좌제를 끊어내고 급격한 시대 변동을 읽어내면서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국민은 이제 피로증에 걸리고 있습니다. 적폐청산이란 광풍도 2년을 넘겨 3년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미 있고 이어져 오는 역사를 스스로의 잣대로 재단하는 어리석은 일을 이제는 그만합시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미래를 위한 자산으로 생각하면서 미래를 밝혀나가는 것이 인간사일 것입니다.

분노의 정치는 분노만 생산할 것입니다. 신라 고승 원효는 이렇게 말합니다
“개인과 세상사의 오염과 비극은 근원적으로 하나가 된 마음자리를 놓쳐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어리석음(根本無明)이라 부르는 존재의 환각에 홀려, 존재하지도 않는 고정 불변의 실체가 있다는 착각이 생겨난다고 했습니다. 이 착각으로 인해 실체의 벽을 이리저리 나눈다는 것입니다. “이 관계가 긍정과 부정, 소유와 박탈로 동요하는 탐욕/성냄/어리석음(貪瞋痴)으로 변질된다”고 했습니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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