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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입다

기사승인 2019.08.23  15: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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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순련 /거제대 겸임교수

   

삼복이 다 지나가도 여름 더위는 물러설 줄 모르고 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선풍기가 연신 돌아가고 에어컨을 가동시켜도 더위의 농도는 더 높아가기만 한다.  

모시 치마저고리를 꺼내어 손질을 시작했다. 유년의 어린 시절 어머니의 어깨 너머로 배운 모시 옷 손질은 꽤나 까다롭고 손질이 많이 갔지만 그래도 그 기억을 살려 나도 제법 모시옷 손질을 잘 하는 편이다. 모시옷을 손질하는 날은 내 마음을 수행하는 날이다. 일에 쫓기지 않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날을 택하여 수행하듯이 나를 가꾸는 작업이 바로 모시옷 손질하는 날이다. 모시옷을 손질 하는 날은 특별히 날씨를 잘 택해야 한다. 아침부터 아무런 사심 없이 뜨거운 햇살이 내려야 하고, 구름 한 점 없는 더운 날이어야 모시 올이 단단히 살아서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제 멋을 낸다.

쌀풀을 쑤어 작은 덩어리 한 개도 없이 잘 어깨고 문질러서 걸쭉하게 풀물을 만들어 놓고 모시옷을 풀물에 담근 후 올 한 개 한 개가 풀물이 쏙 베이도록 주물려 꼭 짠 다음 옥상 위 바지랑대를 중심으로 구김 없이 펼쳐 널었다. 두어 시간 남짓 햇살을 맞힌 후 걷어내려 여러 겹으로 반듯하게 접어서 보자기에 싸서 발로 꼭꼭 밟았다. 밟은 모시옷을 잘 털어서 널어두고 다시 접어 밟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는 동안 모시올 한 올 한 올은 풀물을 먹고 날이 서고 모양을 내며 귀품 있는 자태를 드러내게 된다.

옛날 친정어머님은 이렇게 귀품 있게 자세를 갖춘 모시옷을 인두와 숯불 다리미로 구석구석 구김살을 펴 가며 잘 다려 마지막 동전을 달아 근사한 예술품 한 벌을 내 놓으셨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그렇게 풀물이 잘 든 반듯한 모시옷을 입고 장에 가시는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이런 기억이 너무나 소중하여 나도 여름이면 어머니 흉내를 내며 여름을 나는 동안 예닐곱 번은 모시치마저고리를 입는다. 아직껏 동전을 다는 수준이 나아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쪽물을 들인 청색치마에 하얀 모시 저고리를 입고 나가면 나도 몰래 내가 근사한 조선시대의 여인네가 되는 느낌이 든다. 어디 그 뿐인가? 발끝을 덮는 긴 치마와 손끝까지 내려오는  저고리로 당연히 온 몸에 땀범벅이 되어있어야 하지만, 신기하게도 모시올 하나하나는 절대 살갗에 땀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모시올 사이사이로 어디선가 솔솔 향긋한 바람이 만들어 진다. 모시옷을 입고 걸으면 대나무 숲을 걷는 것처럼 사각사각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내 혼자 느끼는 착각일까?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바람을 입은 것이다.

모시풀이 모시 옷감이 되기까지엔 모시옷을 손질하는 것 보다 몇 갑절의 혼과 정성이 담긴다. 마을 뒷밭에 흡사 깻잎 닮은 모시풀이 어른 키를 넘어서게 되는 이맘때가 되면 모시풀을 베어 줄기만 가마솥에서 쩌 낸 다음 말리기 시작한다. 말린 모시풀을 물에 불려 겉껍질을 삼 톱으로 훑어 낸 후 속껍질만 햇살에 또 바랜다. 이렇게 바랜 속껍질을 또 물에 적셔 수건으로 대강 닦은 다음 손톱으로 일일이 가늘게 째는데 모시의 굵기에 따라 조절하며 가늘게 짼다. 이렇게 만든 다음 삼 삼기를 시작하는데 이 일이 정말 보통일이 아니다. 가늘게 째 놓은 삼 올의 끝과 다른 올의 끝을 일일이 손으로 연결하는 데 이 작업을 삼을 삼는다고 한다. 이 작업은 베를 짜는 과정보다 너무나 힘들어 그런 어머님을 볼 때 마다 어머님이 정말 불쌍해 보였다. 
 
삼의 올을 일일이 입에 넣어 삼 올이 처음부터 끝까지 입 안을 거쳐 침이 묻어지게 한 다음 오른 쪽 무릎에 올려놓고 삼의 끝과 다른 올의 끝을 엇대고 여러 번 비비며 올을 이어나갔다. 이 일은 친정어머니뿐만 아니라, 마을 어머니 모두가 함께 참여하였는데 하루 종일 삼을 삼는 일을 하고 나면 어머니들의 입안이 헐기도 하고 무릎에 상처가 나기도 한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삼을 삼기가 끝나면 베를 날고, 겉보리로 풀을 만들어 솔로 일일이 날실과 씨실에 풀을 먹인 후, 깻묵으로 불을 지펴 씨실과 날실을 말리던 일이 잊혀 지지 않는다. 

다음은 베를 짜는 일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실을 베틀에 올리고 베를 짜기 시작하면 어머닌 늘 끼니를 거르셨다. 도투마리를 베틀의 누운다리에 얹고 날실 사이에 비경이를 밀어 넣고 잉아걸이를 사용하여 잉앗실에 걸어 잉앗대에 맨다. 그런 다음 베를 짜는 사람이 앉을깨 위에 올라앉아 부티를 두르고 말코를 맨다. 이렇게 베틀을 장착하는 과정이 대단히 복잡하여 식사를 하고 나면 그 장착 과정을 다시 해야 하니 차라리 끼를 거르면서 베 짜기를 계속했던 것 같다. 이렇게 직접 짠 모시베를 시집가는 세 딸에게 한 필씩 주신 것이 엊그제 같다.

서천군 한산 모시관을 다녀왔다. 2011년 우리나라 한산모시 짜기가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무더위를 날리는 천연의 섬유 한산모시가 다양한 색상과 창의적인 패션 감각으로 세계적 복식문화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자세한 안내에 여름철이면 우리 선조들의 복식 문화에 대들보가 되어왔던 모시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걸 그룹 크레용팝이 새로운 신곡 화보로 모시옷을 입고 나와 대중들의 시선을 끌고 있는 내용이 얼마 전 뉴스에 소개된 바 있다. 흰색 바지저고리에, 빨강 두건, 빨강 양말, 고무신을 신고 나와 신선하다 못해 상상을 초월하는 감각을 선보였다. 또한 우리나라의 한복연구가들이 세계에서 우리나라 모시 한복을 이용한 새로운 패션을 선보이는 장면도 여러 번 소개되었다. 아직 더위가 떠날 줄을 모른다. 모시옷은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씨줄 날줄을 걸치는 것이다. 서양의 오토쿠튀르(고급 맞춤복)만큼 다양한 색상으로 창의적인 감각을 살린 천연의 섬유 모시옷은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이 여름 더위를 날리는 바람을 입는 것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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