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변방의 곡(哭)소리

기사승인 2019.10.04  14:42:52

공유
default_news_ad1

- /칼럼니스트(칼럼집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저자)

“저 인간 후안무치하기가 꼭 그놈스럽네”
영화를 보던 바로 옆 좌석 혹자가 한 마디 조크를 던졌다. 하긴 요즘 스크린 속 배우 보다 그 말 속의 주인공 인기가 더 핫한 건 사실이다. 그는 일단 포스에서 우월성을 드러낸다. 왼손에는 텀블러요 오른손으론 머리를 쓸어넘기고, 편향적인 글을 SNS에 쏟아내고, 아상에 근원한 독특한 컨셉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그는 쉰을 넘긴 중년이다.

그의 인기몰이 강점은 ‘빽‘이다. 이 땅에서 가장 비싸고 질긴 빽, 그의 강철백은 권욕을 추동하는 원심력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무릇 그 빽을 얻기 위해 일찍부터 생존전략의 틀을 정해 기획 연출하였을 터. 화려한 수사(修辭)와 세련된 이중성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화왕계」(설총)를 보면 비슷한 인물이 있다. 이름 하여 ‘장미’다. 장미는 아부와 교태의 달인인데, 짙은 향기로 화왕을 유혹한다.

“전하, 이 몸은 백설의 모래사장을 밟고 거울같이 맑은 바다를 바라보며 자라났습니다. 봄비가 내릴 때는 목욕하여 몸의 먼지를 씻었고, 상쾌하고 맑은 바람 속에서 유유자적하면서 지냈습니다. 왕의 높으신 덕을 듣고 꽃다운 침소에 그윽한 향기를 더하여 모시고자 하옵니다. 이 몸을 받아 주실는지요”

화왕이 장미를 입궐 시켜 핵심요직에 심어 놓고, 변함없이 애정을 주었다. 인물값을 못한다는 지탄이 있었으나 왕의 총애가 무기이니 탈없이 넘어갔다. 그의 빽은 이 세상에 그 무엇보다 질긴 철판이다. 과유불급, 더 높은 권좌에 앉히려다 그만, 탈이 생겼다.

이때 대중은 그가 ‘통찰 하십옵소서’ 라며 고사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권력 맛을 봐 버린 그는 ‘황송 하옵니다’하고 자리를 꿰찼다. ‘순천자(順天者)는 흥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한다’는 구절이 명심보감에 있다. 인성의 기본을 일컫는 말이다. 모든 일을 순리에 따라 행해져야 하는데, 억지로 막무가내 식으로 몰아치면 역풍을 맞는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역풍이 휘몰아쳐 나라가 쑥대밭이 되었다.

높은 권좌는 거기에 맞는 인품과 도덕성을 담보로 한다. 고도의 검증을 거치는 과정에서 그,의 과오(過誤)가 줄줄이 드러났다. 위조, 증거인멸, 거짓말, 불법투자..., 왕은 장미의 겉만 보고 속을 몰랐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 모두 불평등하고 불공평하고 부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이 격노하자 그가 했던 과거 말들까지 가세하여 돌직구를 날린다.

“위세, 명망, 지위보다는 겸허, 진솔, 사랑이 사람 관계를 지배하는 꿈이다(『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p.9)

“진보, 개혁 진영의 사람들은 자신 속에 똬리 틀고 있는 도덕적 우월감을 버려야 한다. 대중을 가르치려고 들지 말고, 대중의 말을 듣고 또 들어야 한다. 대중이 교화나 훈육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의 주인이라는 것이 진보의 기본 철학이 아니던가 (앞의 글 p.101).

자신의 글이 자신을 나무라고 있으니, 그는 과연 일류 배우 자격이 있다. 이쯤에서 화왕계의 백두옹 같은 인사가 나타나야 한다. 그에게 자신의 말에 책임지라고 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후손에 면이 설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공정성, 도덕성의 문제를 진영논리로 비화시키고, 윗선까지 가세하여 대립과 갈등을 부추긴다. 극심한 국론분열에 정의는 이미 시궁창에 처박혔다. 경제는 바닥을 쳤고, 피해는 오롯이 국민 몫이다.

화왕계에서 백두옹이 왕을 찾았다. “저는 아름다운 외모와 향기와 교태가 없고, 걸음도 둔중합니다.” 하고 운을 뗀 뒤, 올바른 국정운영에 대해 조언하는 대목이 있다. 곁에 있던 신하가 들어보니, 구절구절 맞는 말이라 왕께 아뢴다.

“전하, 백두옹과 장미 중 누구를 취하시겠습니까?”

화왕은 갈등한다. 충신도 필요하고 어여쁜 장미의 교태도 좋기 때문. 이때 백두옹이 왕의 갈등을 한방에 정리해 준다.

“제가 온 것은 임금님의 총명이 모든 사리를 잘 판단한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뵈오니 그렇지 않으십니다. 무릇 임금 된 자로서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하지 않고, 정직한 자를 멀리하지 않는 이는 드뭅니다. 그래서 맹자는 불우한 가운데 일생을 마쳤고, 풍당(馮唐)은 낭관(郎官)으로 파묻혀 머리가 백발이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이러하오니 저인들 어찌하겠습니까?”

그리고는 물러나려 하자 왕이 정신을 차린다. 잠시 오판하여 실수할 뻔 했던 자신을 책망하며 결단을 내린다. 백두옹을 취(取)하고, 단오하게 장미 사(捨)한다.

장미와 할미꽃을 의인화 한 이 아득한 신화가 오늘 이토록 절감될 줄 미처 몰랐다.

극장에서 들은 청년 불만뿐이랴. 이제 십대들까지 정의를 비웃는다. 서민만 착하고 정직하면 불공평하다는 논리를 편다. 실력보다 인맥이 중요하고, 노력보다 빽이 최고인 줄 이번에 확인했다고, 그동안 받은 모든 가르침이 개뻥임을 벼락치듯 깨달았고 한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평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나라,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나라, 이웃의 아픔을 이해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신 취임식 날 공약을 잊으셨나요. 어서 장미를 내쳐, 패착을 만회 하소서!”

이런 직언을 할 백두옹이 정녕 없단 말인가.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