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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밀감을 아시나요

기사승인 2019.11.04  12: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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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스토리텔링북7집 - 옥건수

국가기록원- 70년대 거제도 밀감밭, 서이말 인근으로 추정

대학시절(1966년)에 밀감농사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지세포에 있는 수만 그루의 밀감묘목장은 부산 K대학교 원예과에 재학중인 나에게는 신기루를 보는 것 같았다. 묘목 하나하나마다 생명력이 느껴져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졸업하면 반드시 밀감농사를 짓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공부하다 방학 때 거제에서 밀감을 재배할 적합한 땅을 찾아다녔다. 먼저 거제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해금강 마을로 찾아갔다. 밀감농사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은 없었지만, 해금강 인근 마을이 밀감을 재배하기 좋은 땅이라 여겼다. 마침 해금강 뒷마을에 이천 여 평 남짓 땅이 매물로 나와 있었다. 그 땅이 마음에 들었던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집으로 달려갔다. 

  대문을 열자 아버지를 찾았다. "내년이면 졸업인데, 취직할 때도 마땅치 않아 해금강에 땅을 사서 밀감재배를 하고 싶습니다.”하고 강한 포부를 밝혔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이놈아,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것이 아니야. 밀감농사에 대한 사전지식도 없는 놈이 무슨 농사를 짓겠다고?" 하면서 내 말을 단박에 잘라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아버지께 밀감농사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뒤 농촌지도사 시험에 합격했다. 직장이 생겨 서울로 떠났던 나는 수 년 뒤에 나는 다시 장승포로 돌아왔다. 따뜻한 고향땅이 못내 그리웠다. 한편으로는 장목중학교에서 교사 생활(1971)을 하며 틈틈이 학교 실습장에다 밀감나무를 재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밀감농사는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았다. 정성을 쏟는다고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이아니었다. 처음에는 건강하게 자랐던 묘목들이 한파가 몰아치자 순식간에 얼어죽어 버렸다. 그러다가 밀감농사에 대한 마음도 점점 멀어졌다.
  이후 수십 년간 나는 밀감농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정년퇴임을 한 후에도 취미 삼아 사진촬영을 했다. 그러다가 올 봄에 지심도 탐방을 했다. 그때 왕할머니집에 들러 밀감나무 이야기를 끄집어내자 할머니의 눈에서 생기가 돌았다. 뜻밖에도 지심도 밀감나무에 얽힌 이야기였다.
“옥선생, 나는 지세포 밀감밭의 주인과 외사촌 지간이야. 그래서 밀감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재배하게 되었지, 내가 1954년 지심도로 시집와서 얼마 후에 밀감을 심었어. 그때가 1956년쯤일 거야. 당시는 밀감 1박스를 부산으로 가져가면, 사과 1박스, 배 2박스와 바꿔줄 정도였어. 그럴 정도로 큰 수확이었지. 그 돈으로 5남매를 대학까지 공부시켰지. 밀감 때문에 한 30, 40년을 잘 벌어먹었어. 그랬는데 그것도 과잉생산(1990)을 하게 돼 값이 폭락하고 말았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풍 매미(2003)까지 들이닥쳐 그길로 지심도 밀감나무가 모조리 날아가 버렸지”


  “그런 뒤에도 추위에 강한 유자도 심고 마늘, 파, 시금치, 감, 매실 등을 심어 짭짤한 재미를 보았어. 하지만 20년 전부터 비닐하우스가 등장하자 사계절 농산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더군. 그때부터 ‘돈 섬’이라 불렸던 지심도가 다시 ‘외딴섬’으로 전락했다 아이가. 요즘은 국방부로부터 돌려받은 지심도를 개발한답시고 이런저런 규제를 하곤 해. 수십 년간 사용한 농토를 앗아 가는 바람에 지심도 사람들은 설 자리를 잃었어. 나야 뭐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우짜모 좋겠노....”
  왕할머니 이야기에 의하면, 처음에 일운농협장(1956)이었던 외삼촌(김수관)의 권유로 밀감농사를 지었다는 사실이다. 이후, 태풍 매미의 여파로 바닷물이 들이닥친 데다 가뭄이 계속되는 바람에 밀감나무가 다 말라죽었다. 그때 할머니의 밀감나무는 200주였고, 집집마다 50주에서 100주 정도는 있었다. 밀감농사는 지심도에서만 지은 것이 아니었다. 가배 성터에서도, 사등면(신길생)에서도 일운면에서도 지었다. 또 외도, 지세포, 공곶이에서도 지었다. 이 모두 갑작스레 들이닥친 한파를 극복하지 못해 지속되지 않았다.


 요즘은 밀감나무를 실내에서 심는 것이 유행이다. 밀감농사에 대한 미련 때문에 묘목을 구하러 다니지만 쉽지 않다. 아열대기후의 여파로 밀감나무 묘목을 찾는 사람이 많은 탓이다. 지심도에서도 이미 한혁기 씨가 시험재배를 하고 있다. 겨울에 서풍을 막아주는 지세포, 망치, 학동, 가배 땅이 밀감농사를 짓는 데 적합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나는 밀감밭을 조성할 최고의 땅으로 '지심도'를 꼽는다. 밀감농사에 대한 미련이 남아 50여 년간 알음알음 지켜보고 연구한 나머지다.  


  거제시도 점차 온대기후에서 아열대기후로 바뀐다. 하지만 거제의 미래 열대 과일 재배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감귤류 재배는 만감류(한라봉, 천혜향, 황금향, 레드향)가 대부분이다. 이 모두 하우스 농사를 통한 과실이고, 노지에서 재배한 과실은 아니다. 지심도는 한때 '돈섬'이라 부를 정도로 밀감농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그리하여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낸 이야기도 제법 쏠쏠하다. 6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호황을 누려 축적된 경험도 적지 않다. 이를 바탕으로 지심도 노지에서 재배한 '거제밀감' 브랜드 탄생을 기대한다.

 

 

 

 

옥건수 = 거제시 연초면 출생, 동아대학교 원예학과 졸업, 장목중학교 교장 역임, 세계일보 명예기자, 거제수필문학회 부회장, 동북아식물연구소 자문위원, 거제도 이야기 카페지기, 거제사진연합회 회장(현)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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