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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을 생각하다 ②

기사승인 2021.01.08  08:5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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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연재] 고영주 /(전) 거제지역자활센터 실장

2. 인간사회의 불평등

1) 인간은 불평등을 좋아하나?

인간은 불평등을 좋아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임이론 가운데 행동경제학에서 제출하고 있는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란 게 있습니다. 이 게임은 심리학자로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이 1982년에 제안하였습니다. 최후통첩게임은 성선설과 성악설,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등을 배제한 채 시도되었고, 여러 가지 변형된 형태가 있지만 기본적인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A와 B(피실험자), 두 사람이 게임에 참여한다. 진행자(실험자)는 A에게 일정한 금액(1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다양하다)을 공짜로 준 다음 B와 나눠 가지라고 한다. A가 B에게 얼마를 제안하든 A의 자유지만, B가 그 제안을 거절하면 두 사람은 한 푼도 건지지 못하며, B가 제안을 받아들이면 A는 약속한 돈을 B에게 주면 된다.

이 게임과 변형게임들의 가정과 결과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 한 가지는 이렇습니다. 만일 인간이 주류경제학에서 가정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즉 ‘합리적인 경제적 인간’이 맞다면 1만원 가운데 설령 10원을 제안받더라도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자체로 이익이니까요. 하지만 조지프 하인리히(Joseph Henrich)를 비롯, 많은 연구진들이 행한 수백 건에 이르는 실험과 전 세계 20여 사회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공짜 돈을 얻은 사람이 상대방에게 제안한 금액의 비율이 5:5인 경우가 50% 이상이며, 6:4와 7:3까지 합하면 80%에 달했다고 합니다. 두 피실험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을뿐더러 앞으로 만날 일도 없어서 인간적인 배려를 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는데도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려 한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눈여겨볼 점 한 가지는 대략 20% 이하의 낮은 금액을 제안받은 B의 대부분은 이익을 포기하고 제안을 거절하여 둘 다 한 푼도 갖지 못하도록 거절권을 행사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침팬지 버전의 실험(돈 대신 건포도를 사용)과는 대조되는데, 침팬지들은 A가 어떤 분배를 제안하더라도 B가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비교해서 생각해볼 만한 결과입니다. 이와 관련해 뇌과학자인 정재승은 공동 저서인 『1.4킬로그램의 우주, 뇌』에서 “우리는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사회적 불의와 싸우는 뇌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리처드 윌킨슨(Richard Wilkinson)과 케이트 피켓(Kate Pickett)은 『불평등 트라우마』에 2008년 네이쳐(Nature)지에 게재된 논문 「어린이들의 평등주의」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신경경제학자이자 행동경제학자인 에른스트 페르(Ernst Fehr)는 동료들과 함께 수행한 일련의 실험에서 서너 살 된 어린이는 비교적 이기적으로 행동하지만 보통 다섯 살이 넘어가면 불평등을 혐오하는 감정이 발달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실험에서 어린이들은 일곱 살이나 여덟 살이 되면 대부분 불평등을 줄이는 방향으로 물건을 배분하는 방식을 선호했고 그 방식이 개인 자신에게 불리한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맥락은 인류학자인 크리스토퍼 보엠(Christopher Boehm)이 『도덕의 탄생』에서 “양심은 인류가 사회적인 존재가 되는 데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행동을 인도했다. 또한 양심은 인류가 집단의 기준에 알맞은 존재로 만들었고 그에 따라 강한 처벌을 내릴 수도 있는 동료들과 문제를 겪지 않게 했다.”라는 서술과 연결됩니다.

인간이 불평등을 싫어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2010년 2월 네이쳐(Nature)지에 「불평등을 싫어하는 사회적 선호도에 대한 신경 증거」가 게재되었습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FMRI,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을 사용하여 인간의 뇌에서 불평등을 싫어하는 사회적 선호가 존재하는지 직접 테스트한 결과 불평등 회피 선호의 존재에 대한 직접적인 신경 증거를 찾아냈다고 합니다. 뇌의 보상 회로가 분배 불평등에 민감하고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조절된다는 것이며, 사회과학자들의 ‘일반적으로 인간은 공정한 결과를 선호한다’는 가설을 뒷받침했습니다.(「어린이들의 평등주의(Egalitarianism in young children)」와 같이 구글에서 「Neural evidence for inequality-averse social preferences」를 검색하시면 원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만, 원문 전체는 8.99달러를 내야 볼 수 있으니 요약본(abstract)만 한글로 번역하여 읽어도 충분할 듯합니다.)

이러한 최근의 연구 결과들과 견해들이 ‘인간이 평등을 좋아한다’는 일반론으로 이어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고고학자인 켄트 플래너리(Kent Flannery)와 조이스 마커스(Joyce Marcus)가 『불평등의 창조』에서 평등한 사회에서는 “각 개인이 넉넉한 인심을 유지하도록 끊임없이 ‘사회적 압력’이 가해졌다.”고 한 서술은 설명력이 커 보이며, 이것은 최후통첩게임의 변형게임에서 불공정한 결과에 대해 제안자 A에게 수용자 B가 보복권을 행사할 수 있을 때 더 공정한 분배가 일어나고, 불공정한 제안일 경우 수용자 B는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보복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실험 결과와 상통합니다. 또 변형된 형태로써 ‘거절권’이나 ‘보복권’을 아예 없애버린 ‘독재자 게임’에서는 훨씬 불공정한 결과가 나왔다는 점은 ‘사회적 압력’의 존재 유무가 인간의 행위를 결정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인간사회는 본래부터 불평등했나? 인류학자들의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윌킨슨과 피켓은 앞의 책 『불평등 트라우마』에서 선사시대 인류가 대단히 평등했다는 증거는 인류학자들에 의해 제출되어 왔으며 합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또 평등주의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를 “선사시대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평등과 협력의 수준은 현대 인류가 잃어버린 유전 형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인류학자들은 불평등을 방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반(反)지배 전략(비판, 조롱, 배제, 공개적 반감 표현, 죽음, 추방 등)’ 혹은 ‘역(逆)지배 전략’ 때문이라는 합의에 이르고 있다. 집단에서 한 개인의 지배욕은 개인의 자율성을 보호하고 지배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자 함께 행동하는 다른 일원들이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 서열이 높은 개코원숭이 두세 마리가 연합해 우두머리 수컷을 몰아내듯이, 선사시대 인간사회는 지나치게 지배하고자 하는 사람에 맞서 모두가 힘을 합치는 협력적인 단체로 작동했던 듯하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언명은 현대사회의 정치적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원리와 매우 유사해 보이는데, 보엠은 평등주의를 단순한 기계적 평등이나 순진하고 착한 사람들의 소망이 아니라 ‘약자가 힘을 합하여 적극적으로 강자를 지배하는 정치적 위계’로 파악합니다. 또 “특별히 너무 공격적인 한 알파(알파 개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동물들의 한 집단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개체를 가리키는데 사용합니다.)를 겨누는 반항적인 하위자 집단의 합쳐진 무기류를 고려한다면, 그러한 정치적 평준화는 평등주의 문화 혁명에 대한 전적응이라는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반란자들은 직접적인 신체적 모험을 거의 하지 않고서도 그러한 알파를 안전한 거리에서 쉽게 살해하거나 집단으로부터 내쫓을 수 있었다.”고 하며, 윌킨슨과 피킷은 “동일한 무리에 속한 거의 모든 일원이 그 누구라도 등 뒤에서 찌르거나 잠든 사이에 머리를 내리칠 수 있다면 더 이상 힘센 자가 약한 자의 미움을 살 만한 위험을 무릅쓸 리가 없다.”고 해석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평등했던 것만은 아니며, 평등주의 사회에서의 불평등은 산발적이면서 일시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는 것이 인류학자들의 견해입니다. 즉 윌킨슨과 피킷의 얘기처럼 ‘이런 사회의 일원들은 단순히 불평등이 부재한 중립적 상태가 아니라 평등을 도덕적 원칙으로 간주’했기에 불평등이 나타났을 때조차 평등주의 사회로 되돌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현대인과 동일한 호모사피엔스의 역사 가운데 대략 95%에 이르는 기간은 선입견과는 다르게 평등주의 사회였다고 하는데, 짧게 전개한 이 글을 다시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첫째, 인간은 대체로 평등과 공정을 지향하지만 ‘사회적 압력’이 존재할 때 더욱 공정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둘째, 평등주의 사회는 순진하고 착한 사람들의 체제가 아니라 불평등과 피지배를 싫어하는 다수의 정치적 행위(또는 사회적 압력의 행사)로 인해 유지되었다. /계속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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