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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을 생각하다 ⑧

기사승인 2021.01.29  08: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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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연재] 고영주 /(전) 거제지역자활센터 실장

2. 인간사회의 불평등

 4) 불평등의 이유 ① : 루소와 『인간 불평등 기원론』 들여다 보기

○ 루소는 어떤 사람인가

“인간사회의 불평등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나?”라는 물음에 대한 탐색으로 쓴 글이 앞서 ‘인간은 불평등을 좋아하나?’, ‘불평등체제의 등장’, ‘불평등체제의 전개 ①, ②, ③’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평등’을 얘기하면서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루소가 여러 가지 면에서 최초의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첫째, 루소는 최초의 ‘인간 불평등의 발견자’로 칭해집니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였던 레오 담로시(Leo Damrosch)는 『루소: 인간 불평등의 발견자』 라는 책을 썼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책 22장의 제목은 ‘고백록, 최초의 정신 분석’입니다.

둘째, 루소는 임마누엘 칸트의 그 유명한 ‘규칙적인 산책(오후 3시30분)’을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멈추게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의 시계’로 불렸던 칸트가 딱 한 번 산책을 멈추었던 이유는 루소의 책 『에밀』을 읽다가 너무 빠져든 나머지 시간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칸트와 헤겔이 가장 존경한 철학자가 루소라고 하지요.

셋째, 인간의 권리라는 개념은 17세기 자연권 사상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나, 루소는 제가 아는 범위에서 ‘인간의 권리(Rights of Men)’라는 말을 최초로 쓴 인물입니다. 『사회계약론』에 등장한 이 말은 어떤 특정한 상층계급이 아니라 사회의 최하층 계급인 노예와 어린이를 포함한 보편적 개념으로서의 ‘인간의 권리’, 즉 현대적 의미의 ‘인권’을 얘기한 최초의 인물입니다.

넷째, 만일 루소의 『고백록』을 자서전이라고 한다면 시쳇말로 자신의 ‘찌질함’마저 자서전에 쓴 최초이자 어쩌면 최후의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자서전도 자신을 미화하지 않은 경우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루소는 달랐습니다. 또 이용철의 『고백록』 해제에 따르면 『고백록』은 ‘최초 현대인의 초상화’이기도 합니다.

다섯째,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아르놀트 하우저(Arnold hauser, 1892-1978)는 “루소는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말한 최초의 인물이요, 민중을 위해 말하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해 말하는 것이기도 했던 최초의 인물”이라고 했습니다. 아르놀트 하우저는 또 “루소와 더불어 처음으로 소시민 계층과 가난하고 억압받고 아무 권리도 없는 일반 대중이라는 보다 광범위한 사회 계층이 문학적인 발언대에 오르게 된다.”라고 썼습니다.

여섯째, 민주주의의 원리라는 관점에서 ‘지방 분권’ 또는 ‘지방 자치’에 대한 최초의 아이디어를 제공하였습니다. 『사회계약론』 ‘Chapter 3’의 ‘제13장 주권이 유지되는 방법(Ⅱ)’에 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루소가 끼친 영향력은 넓고 깊어서 위 여섯 가지 ‘최초’만으로는 설명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루소는 매우 입체적인 인물입니다. ‘로베스 피에르와 마르크스를 낳은 혁명의 아버지 /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세운 인민 주권론의 창안자 / 신랄한 자기 분석으로 내면을 파헤친 프로이트의 선구자 / 나르시시즘, 마조히즘, 박해 망상에 시달린 기괴한 천재 / 시대와 불화한 고독한 예언자 루소를 만난다!’라는 『루소: 인간 불평등의 발견자』의 출판사 서평은 루소라는 인물의 복잡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어쨌거나, 루소의 글을 읽다 보면 ‘평등’과 ‘자유’의 관계를 정립하는데 도움을 받습니다. 제가 앞의 글들에서 썼고, 계속해서 쓸 예정인 ‘평등과 평등에 기반한 자유’라는 말의 90%는 루소에게 빚졌고, 필리프 판 파레이스(Philippe Van Parijs)와 야니크 판데르보호트(Yannick Vanderborght)가 『21세기 기본소득』에서 제시하고 있는 개념인 ‘실질적인 자유’도 이에 근거하여 이해하였으며, 기본소득 옹호론자들의 철학적 기반이 루소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 같다는 판단도 하였습니다.

○ 루소가 말하는 ‘불평등’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과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Utopa)』는 불평등과 빈곤에 대한 기존의 통념에 도전했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불평등의 기원에 대한 루소의 견해를 살펴보기 전에 『사회계약론』 ‘Chapter 2’의 ‘제4장 주권의 한계’와 ‘제11장 법의 여러 가지 체계’에 나오는 다음 문장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권리의 평등과 거기서 비롯되는 정의의 개념이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바람으로부터 유래하므로 결과적으로는 인간의 본성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 제4장

“환경의 추이가 항상 평등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입법은 항상 평등을 유지하는 쪽을 지향해야 한다.” - 제11장

이 두 개의 문장은 루소 사상의 전제에 해당한다고 여겨집니다. 첫째 문장은 평등과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므로 그 자체로 타당성과 정당성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너무나 간결하고 명쾌하게 정당성을 확보합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평등과 정의를 원한다! 따라서 우리의 요구는 정당하다!”입니다.

둘째 문장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또는 어떤 집단이 끊임없이 불평등을 조장하고 고착‧심화시키려 하므로, 우리는 평등을 갈망하고 실현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읽힙니다.

루소에게 있어 불평등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적 또는 신체적 불평등’이며 ‘다른 하나는 ‘도덕적 또는 정치적 불평등’입니다. ‘자연적 불평등’은 나이, 건강, 체력의 차이나 영혼의 자질 차이로 성립됩니다. ‘정치적 불평등’은 일종의 약속(사회계약)에 좌우되고, 사람들의 동의로 정해지거나 적어도 용납되는 것으로 정의됩니다.

루소에게 있어 사회적 불평등의 시작은 “저마다 남을 주목하고 자신도 남에게 주목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하나의 가치를 지니게” 되면서부터입니다.

“노래를 가장 잘 부르고 춤을 잘 추는 사람, 얼굴이 잘생기거나 힘이 센 사람, 재주가 가장 뛰어나거나 언변이 가장 좋은 사람은 존경을 받았다. 이것이 불평등을 향한, 그리고 동시에 악덕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이러한 최초의 선호(選好)에서 한편으로는 허영심과 경멸이 태어났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치심과 부러움이 생겨났다.”

이 글은 인류학자들이 밝혀낸 불평등의 원인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와 일치합니다. 그리고 ‘무임승차자’의 허영심(우월 의식)과 경멸을 받아들인 대가는 신분제, 경제적 불평등, 종속이었습니다.

또 루소는 인류에게 있어 “자연적 불평등이 제도의 불평등에 의해 한층 증대되어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구체적으로 “할당의 여러 원리들과 그 원리들을 실행에 옮기는 방법들은 언제나 특정 개인이나 특정 집단 혹은 특정 계급에게 우월한 입지를 부여하고 또 그들의 입지점을 고정시키도록 생겨 있다.”는 소스타인 베블런의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 루소의 불평등 해석

이제 불평등체제가 등장하고 유지되어온 까닭을 루소를 통해 짧게 정리해야겠습니다. 다음은 루소가 『인간 불평등 기원론』 2부의 첫머리에 서술한 내용입니다. ㉮, ㉯, ㉰는 이어진 문장입니다.

㉮ 어떤 땅에 울타리를 두르고 “이 땅은 내 것이다”라고 말하리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런 말을 믿을 만큼 단순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최초의 인간이 문명 사회의 실질적인 창시자이다.

㉮는 같은 책의 “나보다 힘이 아주 센데다가 상당히 타락하고 게으르며 사납기까지 한 사나이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나에게 자기를 먹여 살리라고 강요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물음의 대답으로 여겨집니다. 아마도 ㉮의 ‘최초의 인간’, 즉 인류학자 크리스토퍼 보엠이 말한 ‘불량배와 사기꾼’들은 폭력과 속임수를 써서 차지한 그 땅을 임대하여 소작료를 챙기거나 노예를 부려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길렀겠지요.

이 ‘무임승차자’의 사기 사건과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사건의 공통점은 공유재를 편취(騙取, 남을 속여서 재물이나 이익 따위를 빼앗음)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죄가 더 무거울까요?

㉯ 말뚝을 뽑아버리고 토지의 경계로 파놓은 도랑을 메우면서 동류의 인간들을 향해 “저런 사기꾼의 말을 듣지 마시오. 과일은 모두의 소유이고 땅은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는다면 당신들은 파멸할 것이오”라고 외친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얼마나 많은 죄악과 싸움과 살인, 얼마나 많은 비참과 공포에서 인류를 구제해주었을 것인가?

㉮와 ㉯는 플래너리와 마커스가 『불평등의 창조』 말미에 적어 놓은 안타까움을 재소환합니다. “이렇게 된 것(불평등 사회가 만들어진 것)은 우리 조상들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불평등에 저항할 수 있는 수십 가지 가능성이 있었지만 항상 단호한 의지를 보이지는 않았다. 덕, 사업적 역량, 용맹을 높이 평가한 점에 대해서는 그들을 용납할 수 있다. 다만 그러한 특성이 세습된다는 견해만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 그러나 그 무렵에 사태는 더 이상 이전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이러한 소유 관념은 순차적으로 발생한 그 이전의 많은 관념들에 의존하는 것으로, 인간의 정신 속에 한순간 갑자기 형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는 이미 관습적 우월주의와 관습적 열등의식이 자리 잡은 상태를 말합니다. 거기에다 어느 누구도 아주 오래전 조상들 가운데 누군가는 사기를 쳤고, 누군가는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 도달했다는 것이지요. 미국의 역사에서 보듯,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땅을 빼앗았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음에도 되돌릴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루소의 사상은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에까지 이어집니다.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에서 ㉯의 “저런 사기꾼의 말을 듣지 마시오. 과일은 모두의 소유이고 땅은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는다면 당신들은 파멸할 것이오”라고 외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생각에 동의하였지만,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습니다.

헨리 조지의 경제 사상은 주류경제학자들(신고전학파)과 자본가들에게 철저히 외면받은 정도를 넘어서 짓밟혔습니다. 오랜 시간 그들은 헨리 조지의 흔적을 지우려 애썼지만, 헨리 조지의 생각은 우리나라에서조차 ‘토지 공개념’으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이러한 루소와 헨리 조지의 생각은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 1857-1929)에 이르러 매우 간결하게 정리됩니다. 베블런의 관점에서 ‘신분제와 사적 소유의 기원은 강제적 폭력이며, 이를 영구화한 것은 폭력과 제도적‧이데올로기적 정당화’입니다.

루소의 위대한 점 가운데 하나는 ‘인간이 스스로 만든 불평등’을 ‘새로운 사회계약’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 해소해야 한다고 일깨웠던 사실에 있습니다. 그 ‘새로운 사회계약’은 무엇을 기반으로 해야 하며, 어떤 종류의 것이어야 할까요?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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