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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무엇인가 ⑫

기사승인 2021.02.19  09: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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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연재] 고영주 /(전) 거제지역자활센터 실장

3. 기본소득

 1) 위기의 징후들과 ‘쇼생크 탈출’

인간은 나쁜 일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꺼려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위기의 징후들이 가까이 다가와도 애써 외면하며, ‘근거 없는 낙관주의’에 빠지기 십상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행동경제학의 교과서라고도 불리는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은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합니다.

“‘세상은 순리대로 돌아간다’는 편안한 확신은 자신의 무지를 외면하는 무한에 가까운 능력에서 나온다.”

하지만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의 추세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 불평등한 상황을 마주하고 있는 1%와 99%의 생각이 다를 뿐이겠지요. 이 상황을 천국처럼 여기는 소수의 입장에서야 지상 낙원이 도래한 상황이겠습니다만, 우리는 어떤 느낌과 판단으로 마주하고 있을까요?

○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위험

4차 산업혁명에 관한 논의들을 살펴보면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자리가 감소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지요.

1차•2차 산업혁명은 기계와 사람이 결합되는 일자리를 창출했고, 3차 산업혁명 뒤에는 사람과 사람이 결합되는 서비스산업에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났습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AI)이 등장하는 4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사람이 들어설 일자리가 얼마나 만들어질까요?

다음은 ‘LG 경제연구원’이 2018년에 제출한 보고서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위험진단」의 일부입니다.

“우리나라 노동시장 일자리의 43%가 자동화 고위험군으로 나타났다. 2017년 상반기 기준 전체 취업자 약 2,660만 명 중에 1,136만 명이 향후 인공지능에 의해서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확률 0.3에서 0.7 미만의 중위험군은 전체 취업자의 39%인 1,036만명, 대체확률 0.3 미만의 저위험군은 18%인 486만명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2016년의 ‘한국고용정보원’의 보고서 「기술변화에 따른 일자리 영향 연구」의 예측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에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해 고용 위협을 받게 될 취업자 수는 전체 취업자 2560만명의 70%를 웃도는 1800만명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직군별로 보면 단순노무직군의 대체율은 90%를 웃돌고, 고소득 직종으로 분류되는 관리자군의 경우에도 대체율이 49%에 달합니다. 덧붙여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위험진단」이 예상하고 있는 고위험군에 대한 서술을 옮기면 이러합니다.

“직업별로 살펴본 고위험 취업자 분포를 산업별로도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 결과 고위험군 취업자 1,136만 명의 63%가 ‘도매 및 소매업’, ‘제조업’, ‘숙박 및 음식점업’ 등 이른바 3대 고위험 산업에 몰려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도매 및 소매업’은 취업자 377만 명 중 75%(283만 명)가 고위험군에 속한다. 이어서 ‘제조업’ 취업자 444만 명의 67%(299만 명), ‘숙박 및 음식점업’ 취업자의 59%(133만 명)가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3대 고위험 산업이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40%로 높은 편인데다가, 고위험군 비중도 산업 평균에 비해서 높은 결과다. 도매 및 소매업의 고위험군 비중이 높은 이유는 판매종사자의 비중이 전체 산업 평균에 비해서 48% 포인트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또,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McKinsey Global Institute)의 2017년의 보고서 「실직, 일자리 획득 : 일자리, 기술 및 임금에 대한 미래의 일자리가 의미하는 것(Job lost, job gained: What the future of work will mean for jobs, skills, and wages)」의 주된 내용 역시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한국고용정보원’과 ‘LG 경제연구원’의 연구 결과와 다르지 않습니다.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의 보고서를 보면 2030년까지 ‘중간수준에서 가장 빠른 수준의 자동화 채택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할 때, 전 세계에서 4억에서 8억 명 사이의 개인이 자동화로 대체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산업혁명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들을 살펴보면, 과거에 진행된 산업혁명과 기술혁신은 노동을 대체하기보다 새로운 일자리들을 만들어왔다는 점들을 근거로 합니다. 이들은 변화의 시기에 고통받고 버려졌던 수많은 사람들이 누구인지, 고통의 크기가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감정은 빼고, 냉철하게 질문을 던져봅시다. 그렇다면 과연 4차 산업혁명 뒤에도 그전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한 위 맥킨지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자리에 대한 두려움의 역사는 근거가 없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각국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고, 임금은 높아지지 않을 것이며, 소득 양극화는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불평등, 즉 소득 양극화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은 보수적인 색채의 기관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와 함께 눈여겨볼 대목은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각국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보수적이라거나 기득권을 옹호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어떤 기관, 어떤 집단에서도 자유시장에 맡겨놓아야만 한다는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이 ‘자유시장’만으로는 불가능함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불안정 노동자의 증가

실업률 상승, 비정규직 증가 및 근로빈곤층 발생 등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추세입니다. 또한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1995년 『노동의 종말』에서 예로 들었던 ATM기계를 훨씬 뛰어넘는 기술 발전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리프킨이 예견했던 ‘노동의 종말’이 일자리 감소와 실업의 증가를 의미했다면 이런 예상에 더해진 것이 불안정 노동자의 증가입니다. 우려가 가중되는 것은 불안정노동자 또는 불안정무산자를 지칭하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가 양산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특히, 웹(Web) 기반의 플랫폼 노동이 그러합니다.

플랫폼 노동에 대한 정의와 분류는 ‘한국노동연구원’에서 2020년에 발간한 연구보고서 「디지털시대의 고용 안전망; 플랫폼 노동 확산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에서 집중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 장지연은 “플랫폼 노동에 대한 직관적인 정의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일자리가 아닌) 일거리를 구해서 하는 노동’이다”라며 플랫폼 노동 유형 세 가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습니다.

첫째, 승객 운송이나 배달 대행, 개인 서비스 등 지역 기반의 긱 노동(gig work).
둘째, IT 프로그래밍이나 번역 등의 프리랜서 일.
셋째, 명함 타이핑처럼 작게(잘게) 나누어놓은 과업을 온라인으로 수행하는 클라우드 워크(cloud work).

장지연의 ‘첫째’ 유형의 구조는 ‘플랫폼 소유자-중간 관리자-플랫폼 노동자’이거나 ‘플랫폼 소유자-플랫폼 노동자’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는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작동이 산업에서 구현되는 방식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 심지어 공기업까지 ‘원청-하청-재하청’의 구조로 수렴되는 양태(樣態), 지식재산권을 기반으로 한 프랜차이즈(franchise, 가맹업)산업에서의 ‘본사-가맹점주-단기 임시직’이라는 구조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피케티의 개념을 빌리면, 피라미드의 최정상에 있는 ‘상인 우파’와 ‘브라만 좌파’가 ‘제3신분’의 노동을 착취하거나 ‘위험과 부담’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자본주의가 작동한다는 것이지요.

이때 새롭게 등장한 문제는, 임금노동과 자영이라는 기존의 이분법체계와 다른 지점에 플랫폼 노동이 위치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앤디 스턴(Andy Stern)은 『노동의 미래와 기본소득』의 ‘제5장 프리랜서 경제의 그늘’에서 이렇게 서술합니다.

“일을 맡긴 고용주 입장에서 보면 이런 시스템은 큰 장점이었다. 인건비, 의료혜택, 사회보장 등 직원들에게 들어가는 각종 경비를 지불하지 않고도 필요한 업무를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서술은 기존의 이분법체계를 바탕으로 설계된 사회•경제적 체계의 정합성이 왜 현실에서 축소되고 있는지, 플랫폼 기반의 경제가 누구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작동하는지를 간결하게 보여줍니다.

○ 노동시장의 변화와 ‘쇼생크 탈출’

사실을 말하자면, 제가 앞서 소개한 몇몇 연구보고서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위기 상황’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내용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저는 우리나라에서 1995년에 개봉했던 영화, ‘쇼생크 탈출’을 떠올렸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해석, 상징을 읽어내는 방식은 다양합니다만, 저는 브룩스(제임스 휘트모어)와 레드(모건 프리먼)에 주목하였습니다. 쇼생크 교도소를 자본주의 사회로, 교도소장 노튼을 자본주의 사회의 불로소득자이자 무임승차자로 보면, 브룩스와 레드는 임금노동자에 해당합니다.

산업사회에서의 임금노동자인 브룩스와 레드는 비록 착취당하고 있지만 가석방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곳은 원하지 않던 곳이었으나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스)이나 젊은 토미(길 벨로우스)처럼 교도소장과 간수들의 심기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안락하고 편안한 공간’이었기 때문이지요.

산업사회 임금노동자의 행복은 앤디가 악명 높은 간수인 보안과장 해들리에게 도움을 주고 난 다음, 지붕 보수 작업을 하던 죄수들에게 해들리가 건네준 시원한 맥주와 같습니다. 레드의 나레이션은 이러했지요.

“관대하기도 했지, 그 지랄맞은 간수장의 목소리. 우리는 마치 자유인처럼 앉아 햇빛을 받으며 맥주를 마셨다. 마치 자기 집 지붕을 고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린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도서관 사서였던 브룩스는 가석방 당하지 않기 위해 동료 죄수인 헤이우드(윌리엄 새들러)의 목에 칼을 들이대면서까지 저항하지만, 끝내 가석방을 당하고야 맙니다. 가석방 당한 브룩스가 식료품점에서 했던 일이란 ‘물건 담아주는 일(부스러기 노동, gig work)’이었고, 끝내 숙소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합니다.

가석방을 원치 않았던 늙은 레드. 그렇지만 그도 끝내 가석방을 당해 브룩스의 길을 뒤따라갑니다. 브룩스가 느꼈던 두려움마저도 레드의 몫이 되지요.

제가 보기에 브룩스와 레드가 당한 ‘가석방’은 노동시장의 변화이고, 실업과 불안정 노동에 빠지는 일로 보입니다. 그 두려움, 브룩스와 레드가 느꼈던 두려움은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레드가 브룩스와 달랐던 점은 한 가지였습니다. 그렇다면 악취와 오물로 뒤섞인 앤디의 탈출로 500미터, 긴 돌담의 중간쯤에 있는 떡갈나무와 그 아래의 검은 흑요석 덩어리, 앤디가 남긴 작은 상자 등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참고>

○ ‘프레카리아트(Precariat)’는 이탈리아어로 ‘불안정한’이란 뜻의 이탈리아어 ‘Precàrio’에 노동자 계급을 의미하는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3년에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이후, 2008년 Candeias에 의해 학명을 얻었다고 합니다. 곽노완은 프레카리아트를 ‘불안정무산자’로 정의하는 것이 ‘불안정노동자’보다 외연이 넓고, 노동과정에서 착취당하는 임노동자 뿐만 아니라 노동 밖의 과정에서 공유재(共有財, commonwealth 또는 sharing goods) 및 개인소유를 수탈당하는 사람들을 포괄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 ‘긱 노동(gig work)’은 ‘부스러기 노동’으로 번역하면 느낌이 살아납니다. ‘긱 워커(Gig Worker)’는 본래 1920년대 미국에서 재즈 공연을 할 때, 연주자와 단기 공연 계약을 맺었을 때의 명칭인 ‘긱(gig)’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에서는 ‘긱 워커(Gig Worker)’를 ‘초단기 노동자’라는 표현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 앤디 스턴(Andy Stern)은 1996년부터 2010년까지 ‘북미 서비스노동조합(SEIU, 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의 조합장이었고, 오바마 행정부 당시 ‘재정 책임과 개혁을 위한 국가위원회(심슨-볼스 위원회)의 위원이었습니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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