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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무엇인가 ⑬

기사승인 2021.02.25  08:5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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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연재] 고영주 /(전) 거제지역자활센터 실장

3. 기본소득

2) 기본소득과 공유지, 그리고 『베니스의 상인』

종교적 관점에서 보든 아니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누군가가 울타리를 치기 전까지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습니다. 루소의 말처럼 어떤 땅에 울타리를 두르고 “이 땅은 내 것이다”라고 외친 사기꾼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자연은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에게 공평무사하게 대한다. 자연은 주인과 노예, 왕과 신하, 성인과 죄인을 구분할 줄 모른다. 모든 인간은 자연 앞에서 평등하며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하지만 소유의 문제를 다루는 일은 매우 복잡합니다. 사실상 인간끼리의 갈등, 집단 간의 갈등, 전쟁 등의 핵심이 이 ‘소유 문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말입니다. 루소나 헨리 조지가 얘기하는 것은 이 ‘소유 문제’의 근원에 대한 고찰일 테지요.

특히, 루소가 『인간 불평등 기원론』, 『사회 계약론』, 「정치 경제론」 등에서 보이는 태도는 ‘사적 소유’를 기반으로 한 당시의 시대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이었는가를 느끼게 합니다. 그 날카로운 통찰에도 불구하고, ‘저항할 수 없는 괴물’을 마주한 현실주의자 루소의 절망감!

그런데 제가 루소와 헨리 조지의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소유를 둘러싼 갈등과 불평등이 오죽 심했으면(!) 논문을 쓰고 책까지 내게 되었을까?’였습니다. 할 일 없는 사람들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지요.

○ 사적 소유인가? 공적 소유인가?

또, ‘오죽했으면’ 무려 2400년 전에 스승과 제자 사이였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공적 소유냐? 사적 소유냐?’를 두고 논쟁을 벌였겠습니까. 플라톤은 ‘공적 소유’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적 소유’를 주장했지요.

플라톤은 『국가론(Politeia)』에서 ‘여자, 아이들, 재산’까지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자, 아이들, 재산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인간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족이 생겨난 동기라고 보았습니다. 플라톤이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사회를 꿈꾸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공적 소유’는 자기애(自己愛)를 부정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처럼 ‘신성불가침의 자연권으로서의 사적 소유’를 주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유권은 개인에게 있더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항상 공동체 전체의 이익, 즉 공공선(公共善, common good)에 부합되어야 하고 다른 이웃들에게 열려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지요.

이러한 생각은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 122조는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홍기빈은 “사적 소유란 항상 그 소유자와 소유 대상이 소속된 사회에 대한 일정한 의무와 권리의 그물 안에 들어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사회는 ‘공공의 목적’이라는 명분이 분명할 경우 사적 소유를 제한하거나 필요하다면 아예 그 권리를 가져갈 수도 있다.”라고 얘기합니다.

홍기빈은 『소유는 춤춘다』에서 소유의 정의를 ‘소유자가 자신의 의사를 소유 대상에 관철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한다면 그 구성요소는 네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① 소유자 ② 소유 대상 ③ 타인들을 포괄하는 관계망으로서 고려해야 할 사회적 조건 ④ 앞의 세 가지를 둘러싼 ‘기술적 조건’과 그 변화

무슨 얘기냐 하면, 이 ‘소유’라는 것이 ‘공적 소유’와 ‘사적 소유’의 이분법 안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소유에 대한 인식과 제도 역시 끊임없이 변해왔고 변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베블런은 두 가지 양극단만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일을 ‘사유 관습(habit of thought)에 따른 무지’라고 말합니다.

○ 공유지, 공유자산 그리고 새로운 공유지는 누구의 것인가?

약간의 불편함을 무릅쓰고 당연한 질문 하나를 떠올려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부 지원으로 만들어진 것들, 또는 누군가가 인류를 위해 기부한 것들, 예컨대 광케이블을 설치하여 만든 초고속 인터넷망과 WWW는 공유지(또는 공유자산, 공유재)인가? 사유지(또는 사유자산, 사유재)인가?”

공유지(共有地, Commons)의 사전적 정의는 ‘둘 이상이 공동으로 소유하거나 이용하는 땅’이고,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동소유권’을 가지는 토지를 말합니다.

가이 스탠딩은 공유지를 ‘단순히 소유권과 사용 측면에서 공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곳은 사적 제한과 가정생활로부터 자유로운 지대다. 여러 세대에 걸쳐 물려받는 공유지는 사회를 위해 마련된 공간을 의미한다.’라고 정의합니다. 또 공유지를 ‘공간적 공유지, 사회적 공유지, 시민적 공유지, 문화적 공유지, 지적 공유지’로 분류합니다.

백승호와 이승윤은 공유자산을 ‘자연적 공유자산’과 ‘인공적 공유자산’으로 나누고, 공유자산은 천연자원, 개발 이익 등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 가상의 토지인 인터넷 사용을 통해 창출된 가치들, 일반인들의 자유노동으로 만들어진 플랫폼 기업들의 이익, 경매를 통해 매각되는 주파수까지 공유자산의 범위에 포함시킵니다.

그렇다면 백승호의 주장대로 인터넷은 공유지일까요? 「공유자산 배당으로서의 기본소득」에서 금민이 주장한 내용을 옮겨보겠습니다.

“인공지능은 빅데이터를 사용하여 학습하며, 심층학습 알고리즘에 의해 개발된다. 즉 하드웨어의 발전이 인공지능 개발에 필수적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인류에게 공유자산으로 기부한 WWW(World Wide Web)가 없었고, 또한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하여 소통하고 학습하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인공지능은 결코 개발될 수 없다. 인터넷이라는 공유지가 활성화되지 않았다면 신경망 알고리즘은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기준에서라면 인터넷은 새로운 공유지가 될 수 있습니다. 스탠딩과 백승호의 주장이 뒷받침됩니다.

더불어 4차 산업혁명이 촉발시킨 논의 가운데 다른 한 가지는 새로운 공유지와 그것을 기반으로 한 공유경제에 대한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자연적 공유자산보다 지식공유자산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그렇다면 ‘지식재산권의 주장’은 어느 정도까지 타당할까요? 참고로 스탠딩은 ‘특허권•저작권•상표권 같은 지식재산권을 소유함으로써 얻는 소득’을 불로소득으로 정의합니다.(기본소득을 생각하다⑩ 참고)

197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던 허버트 사이먼(Herbert A. Simon, 1916-2001)은 지식재산권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였습니다. ‘모든 소득의 90%는 이전 세대에 의해서 축적된 지식의 외부 효과(external effect)에서 유래한다’는 주장입니다.

또 에릭 브린욜프슨(Erik Brynjolfsson)과 앤드루 맥아피(Andrew McAfee)는 『제2의 기계시대』에서 “대다수의 새로운 착상은 기존 착상의 재조합”이라고 서술합니다.

허버트 사이먼과 에릭 브린욜프슨, 앤드루 맥아피의 일리 있는 주장을 ‘디지털 무형재’와 함께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최배근은 『이게 경제다』에서 데이터와 아이디어를 상품화시킨 ‘디지털 무형재’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수록 해당 자원 또는 해당 자원으로 만든 상품의 효용이 증가한다고 말합니다. 이를테면, 네이버나 다음 등의 포털 사이트, 미국 IT업계의 대표 업체들인 ‘팡(FAANG: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앱과 앱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iOS나 안드로이드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또 플랫폼 기업 혹은 플랫폼 사업 모델을 기반으로 한 공유경제는 ‘협력 소비’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나와 다른 사람, 기업 내 자원과 기업 밖 자원의 연결을 통해 가치를 창조하는 ‘협력 생산’의 원리를 따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치 창출 방식이 ‘협력적 혁신(collaborative innovation)’이나 ‘가치의 공동 창조(co-creation)’에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무형재는 ‘협력재’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최배근은 그러함에도, 현재의 플랫폼 사업 모델이 ‘돈’ 냄새를 본능적으로 맡는 능력을 가진 기업인들, 이른바 ‘동물적 감각’이나 ‘기업가 정신’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공동체의 복원보다 불평등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공유지에 쌓인 지식과 빅데이터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만 합니다. 또한 플랫폼 기업들이 얻는 수익의 몇 %가 과연 그들의 소유라고 할 수 있는지를 따져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집단지성과 자유노동에 의해 공유지에 쌓인 지식과 빅데이터가 울타리 치기(사유화)를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분배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기본소득 옹호론자들이 과세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공유자산’ 또는 ‘공유부(共有富)’입니다.

기본소득 옹호론자들은 이 ‘공유자산’에 과세한 것을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사용하자고 주장하지요.

○ 『베니스의 상인』과 ‘울타리 치기’

셰익스피어(Willam Shakespeare, 1564-1616)의 5대 희극 중 하나인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이 ‘해피 엔딩’으로 끝나서, 이 작품이 울타리 치기 운동의 잔혹함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저는 ‘기본소득을 생각하다⑥’에서 울타리 치기 운동에서 관찰되는 특징을 첫째, 폭력을 동원한 ‘내쫓기’와 ‘차지하기’, 둘째는 ‘공유지’의 ‘사유화’, 셋째는 변화된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득을 취하는 권력집단의 부상, 넷째는 사후대책으로서의 빈민정책으로 요약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내쫓긴 사람들을 ‘버려진 인간’이라 칭하였습니다.

셰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을 발표한 시기는 제1차 울타리 치기 운동이 한창이던, 토마스 모어가 “양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라고 탄식하던 바로 그때였습니다.

베니스(베네치아)의 악명 높은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우리의 선량한 주인공 안토니오는 샤일록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해 가슴살 1파운드를 빼앗길 위기에 처합니다. 샤일록은 재판정에서 ‘사적 소유권’을 주장하며, 안토니오의 생명 따위는 관심조차 두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판사의 판결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샤일록은 오로지 가슴살 1파운드에만 권리가 있고, 단 한 방울의 피도 빼앗아가서는 안된다. 샤일록의 가슴살 1파운드에 대한 신성불가침의 사적 소유는 오로지 안토니오를 죽여서도 안되고,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게 하면서 단번에 정확히 1파운드만 떼어낼 때만 성립한다.”

그리고 판사는 샤일록의 주장이 ‘경제적 거래의 탈을 쓰고 위장한 살인 행위’라는 본질을 폭로합니다. 이것이 ‘베니스의 상인’을 통해 ‘울타리 치기 운동’의 핵심을 드러내고자 했던 셰익스피어의 의도이며,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회적 맥락입니다.

‘울타리 치기’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공유지를 사유화시켜 사적 이익을 추구한 것에 있다면, 플랫폼 기업은 빅데이터 인클로저(bigdata enclosure), 일종의 ‘지식 인클로저(울타리 치기)’를 통해 수익을 얻습니다.

이 상황을 안토니오(=사회, 공동체)의 가슴살, 허벅지살, 엉덩이살을 떼어내고 있는 것으로 비유하면 심한 일일까요? 하위 99%에 해당하는 우리가 또 ‘버려지는 인간’으로 전락하고 있다면 과한 생각일까요? 우리의 질문은 이러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삶의 수단을 우리에게 똑같이 나눠주시지 않는다면 실로 부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어떤 이는 부족하고 배가 고프며 어떤 이는 풍족하고 배가 부르다면 이것이 합당한 일인가?” - 『나봇 이야기(De Nabuthae Historia)』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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