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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무엇인가 ⑰

기사승인 2021.03.26  08: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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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연재] 고영주 /(전) 거제지역자활센터 실장

3. 기본소득

6)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③

○ 어림짐작과 숙고하기, 그리고 기본소득

행동경제학의 교과서라 불리는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앞서 두세 차례 언급했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의 책입니다.

이 책은 인간의 사고방식인 ‘시스템1’과 ‘시스템2’를 설명하는 데 공을 들입니다. ‘시스템1’은 기본시스템으로 작동하는데, 빨리 생각하며 그래서 효율적입니다. ‘시스템2’는 노력을 요하고 느리며 그래서 아무 때나 나서지 않는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시스템1’은 ‘어림짐작과 편향’에 해당하고, ‘시스템2’는 ‘깊이 생각하기(숙고하기)’를 일컫습니다. 카너먼이 옳다면, 편향은 실재하며, 편향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시스템2’가 담당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기본소득 역시 “판단과 선택의 오류를 풍부하고 정확한 언어로 토론하면서, 그 오류를 인지하고 이해하는 능력 키우기”가 필요하다는 카너먼의 서술을 토대로 생각해야 할 대상입니다. 케인즈와 아인슈타인의 말도 되새겨보면서 말이지요.

“어려움은 새로운 생각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낡은 생각에서 벗어나는데 있다.” -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1946)

“우리가 문제를 초래했을 때 이용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생각으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 중간적 입장의 기본소득

중간적 입장의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필리프 판 파레이스와 야니크 판데르보흐트의 공동저서인 『21세기 기본소득』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는 기본소득의 역사와 정당성, 경제적•정치적 실현 가능성 등에 대한 매우 폭넓고 깊은 논의를 담고 있습니다.

이들은 ‘만인의 자유’를 사명으로 여기며, 기본소득이 단지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삼는 세련된 정책 하나를 또 만드는 것이 아님을 밝히며, 모름지기 기본소득이란 ‘모든 이들이 굳건히 자기 발로 설 수 있도록 튼튼한 발판을 모두에게 제공하는 것’이라고 못박습니다.

이들의 철학적•논리적 바탕은 ‘모두를 위한 실질적 자유(Real Freedom for All)’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또 자유를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이야말로 정의라고 보는 분배적 정의의 평등주의적 관념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은 무엇인가 ⑭’에서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실질적 자유’라는 것을 “누구나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할 단순한 권리(형식적 자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 진정한 역량(돈, 시간적•심리적 여유 등)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본소득은 실질적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것은 윌리엄 베브리지(William Beveridge, 1879-1963)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 수상의 요청에 따라 영국의 사회복지제도를 설계하면서 천명했던 “모든 본질적 자유를 평등하게 누리는 것이 자유주의의 궁극적 목표”라는 언명과 맞닿아 있습니다. 자유주의자 베브리지에게는 만인을 위한 자유를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모든 개인이 법에 명시된 자신들의 자유를 사용할 수단과 의향을 가져야 했던 것이지요.

또한 기본소득은 기존의 복지체계를 대체하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자유의 최소 극대화’에 있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우파적 입장의 기본소득, 그리고 좌파적 입장의 기본소득과는 확실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중간적 입장의 기본소득 옹호론자들은 ‘실질적 자유’를 가장 덜 가진 이에게 그것을 갖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홍기빈은 『21세기 기본소득』을 해석하며 “오늘날은 직업도 너무 다양하고, 노동시장의 상태도 지나치게 분절화•파편화되어 있는 데다가 개개인의 상황이라는 것도 너무 다르다. 개인들이 감당하기 힘들도록 복잡하게 된 산업사회라는 상황에서, 개개인들이 적응하고 뛰어들어서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여지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그 개인이 실질적 자유를 누릴 수 없다”는 말로 현실을 설명합니다.

달리 말하면, 과거에는 생애주기별로 기대할 수 있는 일정한 경로가 보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간적 입장의 기본소득 옹호론자들은 기본소득 지급액을 ‘1인당 GDP의 25%’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9년 우리나라 기준으로 계산하면, 월 57~58만원 정도가 됩니다. 또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논의되고 있는 금액은 월 30만원 정도입니다. 사실 이 정도의 금액으로 불평등이 해소되고, 빈곤이 사라질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21세기 기본소득』에서 말하는 기본소득이란 ‘기본적 필요 욕구라고 간주할 수 있는 것들을 구매하는 데 충분한 액수로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때의 기본소득은 ‘생활임금’의 수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 중간적 입장의 기본소득을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구직활동을 하든 뭔가를 배우든지 간에 일정한 정도의 돈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월 30만원 또는 월 57만원 정도의 금액으로는 충분한 생활비가 되지 않지만, 자기 생활의 무엇인가를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즉, 충분하지는 않지만,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액수라고 할 수 있는 거지요.

이를테면 아르바이트와 취업 준비를 병행하고 있는 대학생에게 주어지는 기본소득은 아르바이트 하나를 줄여,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실질적으로 마련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1세기 기본소득』을 번역한 홍기빈은 “산업사회에서 모든 개개인들이 더 힘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활동자금’”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BIEN과 함께 중간적 입장의 기본소득 옹호론자들은, ‘① 주기성, ② 현금성, ③ 개별성, ④ 보편성, ⑤ 무조건성’이라는 다섯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좌파의 기본소득

좌파의 기본소득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원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좌파에게 있어 기본소득은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하고, 사회적 이동의 가능성을 향상시키며,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으로 정의되기도 합니다.

『기본소득: 자유의 물질적 조건』의 저자인 다니엘 라벤토스(Daniel Raventós)는 “다른 사람에게 종속된 자유는 실질적인 자유가 아니다. 약자(노동자)에 대한 강자(자본)의 억압과 차별이 배제되어 있는, 오직 평등한 사회에서 개인은 실질적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공화주의적 관점에서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는 인물인 라벤토스의 서술에서 보듯, 중간적 입장의 기본소득 옹호론자들이 말하는 ‘실질적 자유’와는 그 수준에 있어 명백한 차이가 있습니다.

곽노완의 말을 빌리자면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좌파 기본소득론자들은 ‘지속가능한 최대의 기본소득’이 인간의 실질적 자유를 실현하고 불평등을 해소함으로써 현재 자본주의 사회의 변혁을 가능하게 할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좌파는 BIEN이 제시하는 다섯 가지 원칙에다가 ‘⑥ 기본소득의 제공 주체는 중앙정부, 지방정부 혹은 초국적 정치단위, ⑦ 충분성’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추가합니다.

여기에서 ‘초국적 정치단위’란, 유럽연합이나 유엔 수준의 기본소득 제안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풀이가 가능합니다. 또 ‘충분성’이란 ‘생활임금’수준 이상이어야 함을 말합니다. 충분성의 원칙은 기본소득이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한결 높은 차원의 실질적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정도로 지급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좌파 기본소득 옹호론자들이 충분성을 원칙에 포함시킨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 기준에서 두 가지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철학적 기초에 있어 중간적 입장과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실질적 자유’라는 개념에 있어서도 더 높은 층위(層位)를 주장합니다. 지향점의 수준이 높다는 의미인 것이지요.

여기서 앙드레 고르츠(Andre Gorz, 1923-2007)의 말을 빌리면, “무조건적이고 충분한 기본소득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살 수 있는 조건의 확보가 아니라,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고 임금노동을 벗어나서 자립적이고 다중적인 활동을 촉진하는 차원에서 제시”되기 때문입니다.

즉, 좌파적인 기본소득은 프레카리아트가 자본주의적인 임노동을 넘어서서 ‘노동해방’으로 갈 수 있게 해주는 ‘종잣돈’이며, 자본주의를 넘어설 공간과 수단을 극대화하는 차원에서 제시되고 있습니다.

둘째, 21세기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입니다. 좌파들은 현재의 자본주의를 ‘인지자본주의(認知資本主義, Cognitive Capitalism)’ 국면이라 파악합니다. 인지자본주의란 정보와 지식이 새로운 부의 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종의 지식자본주의를 말합니다. 따라서 좌파는, 인지자본주의는 ‘상업 노동’이나 ‘산업 노동’이 아닌 ‘인지 노동’을 중요한 착취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가치는 노동에서만 생산되는 게 아니라 지식이나 무형적인 것에서 생산되며, 이런 것들은 인간 집단 전체가 삶을 영위하는 데서 저절로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어떤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고, 어떤 패션의 옷을 좋아하며, 인터넷을 검색하는 일 등의 자기 욕망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생산에 기여하는 활동이 된다는 생각을 반영합니다.

따라서 세상에 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며, 이 산업사회가 만들어놓은 어떤 잉여 생산물, 그리고 사회적 생산 전체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공평하게 나누어 가질 일정한 몫이 있다는 논리를 성립시킵니다.

즉, 자본주의의 성격 변화에 따라 ‘인간이 노동 측면만이 아니라 가치 창출의 실질적 주체로 바뀌었다’라는 인식의 토대 위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기본소득의 액수도 후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 세 가지 버전의 기본소득

세 가지 기본소득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간략하게 다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파적 기본소득은 자본주의를 강화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고, 중간적 입장은 자본주의로 인해 잃어버린 ‘실질적 자유’를 회복하려고 하며, 좌파적 입장은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단과 공간으로서 기본소득을 제시합니다.

또 우파와 중간적 입장에서의 기본소득은 ‘불평등 해소’가 목표 지점이 아니며, 좌파만이 ‘불평등 해소’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복지제도와 관련해서 살펴보면, 우파 기본소득은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를 없애려는 대체재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중간적 입장과 좌파적 입장에서는 기존의 사회보장체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소득분배체계로 접근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주장이 더 미래지향적인 기본소득일까요? 사실을 말하자면, 미래의 기본소득은 이 세 유형의 기본소득과 딱 맞아떨어지는 형태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류 전체가 인지하지 못하는 어떤 사실이 있을 수 있고, 사회의 운동이나 진화의 방향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2017)의 글을 옮기며 이번 회를 마무리하겠습니다.

“해결 과제는 두려움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다. ‧‧‧‧‧‧ 만일 공동체가 모든 개인을 ‘결핍과 그에 대한 두려움에서, 실업이 강요하는 빈둥거림과 그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롭도록’ 보장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증대된 자유와 권리를 평등하게 누리지 못할 것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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