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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무엇인가 ⑲

기사승인 2021.04.08  08:3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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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연재] 고영주 /(전) 거제지역자활센터 실장

3. 기본소득

8) 기본소득 아이디어의 역사 ② : 작용•반작용의 법칙과 기본소득 사상의 출현

‘기본소득 지구 네트워크(BIEN)’의 창립자 가운데 한 사람인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은 그의 저서 『기본소득: 일과 삶의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기본소득의 역사를 네 시기로 분류하였습니다.

스탠딩은 네 시기를 각각 제1의 물결, 제2의 물결, 제3의 물결, 제4의 물결로 구분하였습니다. 스탠딩에 따르면 제1의 물결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후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의 시기를, 제2의 물결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기를 일컫고, 제3의 물결은 196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보장된 연간소득’이 화두로 떠올랐던 시기를 말합니다. 그리고 제4의 물결은 1986년 ‘기본소득 유럽네트워크’의 창립과 함께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이러한 시기 구분은 스탠딩이 『기본소득』에서 제시한 기준이 유일합니다. 물론 저자들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방법으로 기본소득의 역사를 정리합니다만, 시대의 전환점을 다시 살펴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스탠딩의 구분은 유용해 보입니다.

스탠딩에 따르면 이 제1의 물결은 서로 연결점 없이, 산업자본주의의 파괴적 등장에 대한 대응으로서 세상에 나왔습니다. 더불어 ‘임금 노동(wage labor)’의 진전에 맞서 ‘일(work)’의 가치와 공동체를 보존하기 위해, 사회를 조정하는 방식을 상상했던 것으로 풀이합니다.

온전한 의미에서의 기본소득 사상은 18세기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기본소득을 유추해볼 수 있는 짧은 언급들이 이 시기를 전후로 띄엄띄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당시에 인식된 공유자산은 ‘토지’가 거의 유일했다는 점과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는 사실도 떠올리게 합니다.

○ 작용과 반작용 ① : 윈스탠리, “모두의 것이므로 무료!”를 외치다

17세기 젠트리라 불렸던 신흥 지배계급은 "재산이 있는 자가 통치해야 한다."는 확고한 의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평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들은 스스로를 정치세력으로 조직했으며, 사람들은 그들을 '수평파(Levellers)'라고 불렀습니다.

수평파는 재산을 균등하게 분배하자고 주장했고, 신분과 재산을 막론하고 평등하게 참여하는 공화국을 이상(理想)으로 삼았습니다. 비슷한 시기, 국왕 찰스 1세의 목을 친 의회파 지도자 올리버 크롬웰이 왕이나 다름없는 독재 권력을 구축했고, 의회파 귀족들과 젠트리들은 막대한 토지를 강탈했습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디거스(Diggers, 땅을 일구는 사람)’ 또는 ‘참 평등파(True Levellers)’의 대표자였던 제라드 윈스탠리(Gerrard Winstanley)였습니다. 윈스탠리를 비롯한 ‘디거스’들은 버려진 땅을 일구어 공유재산으로 만드는 운동을 하였고, 1649년 5월에 황무지였던 ‘세인트 조지 힐’ 언덕에 정착하였습니다.

그들의 모토는 “모두의 것이므로 무료!”였습니다. 윈스탠리에게 있어 진정한 평등은 토지 사유제를 폐지할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고, ‘디거스’의 규모는 20명 남짓이었으나 그들의 ‘토지공유 사상’은 권력자들에겐 경계의 대상이었습니다.

1650년 3월 말, 크롬웰은 군대와 고용 깡패를 디거스의 마을에 보내 경작지를 짓밟고 집을 불태웠습니다. 아이와 여성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살해당했고, 나머지는 모두 추방당했으며, 윈스탠리는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도둑질•불법 침입•점거를 했다는 죄목이었지요. 윈스탠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내게 주어진 땅을 이용할 자유를 빼앗은 자들이 도둑인가, 아니면 그 땅에 살며 생계를 위해 농사를 지은 내가 도둑인가?”

윈스탠리는 토지가 사유재산이 될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토지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즉 ‘공유자원은 모두의 것’이라는 생각을 실천하려 했던 것이었습니다.

○ 작용과 반작용 ② : 몽테스키외, 로크 그리고 루소

몽테스키외(Montesquieu, 1689-1755)는 『법의 정신』에서 “국가가 모든 시민에게 확실한 생존, 즉 음식과 의복, 건강을 해치지 않는 생활방식 등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순되게도 자선기관들이 나태만 조장한다고 여겼고, ‘영구적인 구호 제도의 확립’에는 부정적이었습니다. 사건 또는 사안별로 ‘일시적인 구호(救護)’를 제공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몽테스키외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본소득을 생각하다 ⑦’에서 잠깐 언급했던 벤담을 비롯해 상류층에 속했던 상당수의 지식인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다음의 로크는 그들 가운데 으뜸이었을 수 있습니다.

로크(John Locke, 1632-1704)는 『통치론』에서 “자선의 원리에 입각해서 누구든 생활을 꾸려나갈 다른 수단이 없을 때는 풍족히 가진 다른 이의 재산에 대해서, 스스로를 극단적인 빈곤 상태에 처하지 않을 만큼의 재산을 나눠 받을 권리를 가지게 된다.”고 서술하였습니다.

또 로크는 『통치론』에서 기본소득의 밑바탕을 이루는 ‘공유자산’과 흡사한 견해를 밝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하느님께서는 이 땅을 모든 인류에게 공동의 것”으로 주었지만, 또한 “모든 인간에게 노동하도록 명령”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지점에서 로크 논리의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핵심은 ‘노동’이라는 낱말입니다.

그는 같은 책에서 "노동이야말로 그것들(사적 소유물)과 공유물 간의 구별을 가져온다. 노동이 만물의 공통된 어머니인 자연보다 더 많은 무엇을 그것들(자연)에 첨가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그의 사적인 권리가 된다."고 주장합니다. 더불어 “나 자신의 것인 노동이 그것들을 원래의 공유 상태에서 제거함으로써 나의 소유권이 발생한다.”고도 하였습니다.

언뜻 노동의 신성함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문장은 식민지 침탈의 대상이었던 아메리카 대륙을 염두에 두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타당합니다. 아메리카 선주민(先住民)인 인디언들의 권리를 무력화시키는 논리라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이 울타리를 치는 행위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토지가 적게 남아 있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까지 이어진 걸 보면 영국의 신흥 자본가들 앞에 광활하게 펼쳐진 미개간지로서의 아메리카 대륙을 상정하지 않으면 해석될 수 없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또 "신은 사람들에게 세계를 공유물로 주었다. 그러나 신은 세계를 사람들이 그것으로부터 취할 수 있는 이익과 최대한의 편익을 위해서 주었으므로, 그것이 항상 공유로 그리고 개간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 신의 의도라고 상정할 수는 없다."는 말로 인클로저 운동, 즉 울타리 치기를 통한 사적 소유권의 확립을 정당화합니다.

토지에 울타리를 치고 사유화하는 행위를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그의 논리는 스스로 “자신은 풍족한 삶을 누리면서도 그의 형제들에게 구호를 베풀지 않아 누군가를 죽게 내버려둔다면, 그가 어떤 신분의 사람이든 이는 죄악이다.”라고 한 말이 진심이 아니었음을 고백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루소(Jean-Jacques Rousseau)가 로크의 해괴한 언명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토지가 한 사람의 사유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잊는다면, 토지의 수확은 모두에게 속한다는 사실을 잊는다면, 인류는 멸망할 것이다.”

○ 제1의 물결 ① :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

로크 논리의 대척점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한 인물이 『인간의 권리(The Rights of Man)』의 저자 토머스 페인입니다. 물론 페인이 로크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 『토지 분배의 정의(Agrarian Justice)』를 저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국 웨일스의 랜더프 지역 주교인 왓슨(Watson)의 설교에서 잘못을 발견하고 『토지 분배의 정의』를 출판하기로 마음먹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페인은 1796년에 출판한 이 짧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미개간의 자연 상태였을 때 땅이 인류의 공동재산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인간은 다 함께 땅을 공동의 재산으로 소유했으며, 땅에서 나는 채소나 짐승 같은 모든 자연 산물도 공유했다. ‧‧‧‧‧‧ 경작으로 이루어진 발전을 모태가 되는 토지 자체와 분리하기란 불가능하다. 그 불가분의 연관에서 토지 재산이란 관념이 생겨났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개인 재산이 되는 것은 토지 자체가 아니라 발전이 이룬 가치일 뿐이다.”

페인에게 있어서 토지는 공유자산이었고, 다만 노동을 투입해서 얻은 생산물에 대해서는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작 토지의 소유자는 누구나 자신이 소유한 토지에 대해 공동체에 ‘지대’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 지대는 재분배 계획의 기금을 마련하는 근거 하나가 됩니다.

그러함에도 그는 사적 소유권을 철폐하자는 주장은 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소유자들에게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정의에 반하는 죄를 일부러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그들에게 어떠한 불만도 토로할 수 없다.”고 선을 긋습니다.

오히려 그는 법적인 소유권의 인정이 사회적 재분배의 근거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즉 소유자들은 토지라는 인류의 공유자산을 독점했기 때문에 ‘지대’를 내야 할 의무를 갖게 되며, 사용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을 포함하는 공동체는 ‘지대’를 얻을 권리를 갖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이와 함께 페인은 “내가 주장하는 것은 자선이 아니라 권리이며, 은혜가 아니라 정의다.”라는 관점에서 재분배 계획의 모금 대상을 추가합니다. 바로 ‘재산 일반’입니다. 그의 빛나는 통찰을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개인 재산을 계산에 넣은 이유는 원칙은 다르지만 근거는 확실하다. 앞서 말했듯이 토지는 조물주가 인류 전체에게 무상으로 준 선물이다. 개인 재산은 사회의 결과물이므로 한 개인이 사회의 도움 없이 개인 재산을 획득하기란 토지를 송두리째 만들어내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다.”

이어서 이렇게 서술합니다.

“개인을 사회에서 분리하고 섬이나 대륙을 소유하게 한다면 그는 개인 재산을 획득하지 못한다. 그는 부자가 될 수 없다. 수단과 목적이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수단이 존재하지 않으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제외한 모든 개인의 재산 축적은 사회 속에서 살아감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또한 개인은 정의, 감사, 문명의 원칙에서 혜택을 입고 있으므로 축적의 일부분을 부의 원천인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페인은 의무와 권리 차원에서, 공유자산인 토지와 개인 재산으로부터 사회적 재분배의 기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페인의 같은 책 내용 중 「기금을 조성하는 방법」을 들여다보면, 21년을 성장기로 잡고 스물한 살 이후의 연령대가 살 수 있는 평균 기간을 30년 정도로 잡습니다. 한 나라의 전 자본 혹은 그에 상당하는 자금이 한 바퀴 회전하는 기간을 30년으로 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본의 1/30이 1년에 한 바퀴 회전하는 것이며, 그만큼이 사망자에게서 새 소유주에게로 넘어가는 몫이 된다는 계산입니다.

그리하여 21세의 청년들에게 1인당 15파운드씩, 쉰 살이 넘은 노인들에게 1인당 10파운드씩 지급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해냅니다. 그리고 기금 중 나머지 금액은 50세 미만의 장애인들에게 지급할 것을 주장합니다.

특히 21세기 현재 시점에서 관심이 집중되는 젊은 층을 겨냥한 듯한 글도 있습니다. “예컨대 젊은 부부가 세상에 나올 때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것과 각각 15파운드씩 손에 쥐고 시작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 경제적 측면에서라도 가난해지는 것을 미리 방지하는 수단을 채택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방법은 스물한 살이 된 모든 사람들에게 삶을 출발하기 위한 밑천을 지원하는 것이다.”라는 첨언입니다.

그의 서술에서 눈여겨볼 대목 하나를 추가로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모든 나라의 빈곤한 대중은 세습에 의해 빈곤을 물려받으며, 이들이 자력으로 빈곤에서 벗어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라는 문장입니다.

이것은 ‘기본소득을 생각하다 ⑪’에서 소개한 바 있는 센딜 멀레이너선과 엘다 샤퍼가 『결핍의 경제학』에서 내린 결론, “실패와 빈곤 사이의 인과관계는 통념과는 다르게 반대 방향으로 형성되는 게 타당하며, 실패했기 때문에 빈곤이 찾아온 경우보다 애초부터 빈곤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훨씬 더 일반적”이라는 것을 무려 200년 이상 먼저 선취한 셈입니다.

페인이 제안한 계획은 기초자산제와 기본소득제의 철학적•논리적 바탕이 되었다고 평가받습니다. ‘공유자산’의 분배나 ‘보편성’의 개념에 있어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다음 회에 소개할 토머스 스펜스와 더불어 기본소득의 진정한 ‘아버지’라고도 불립니다. 하지만 그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잊힌 인물이었습니다.

<참고>

○ 기본소득의 역사에 대한 풍부한 내용은 BIEN의 홈페이지, 『21세기 기본소득』의 제4장, ‘지식공유지대(COMMONS)’에 올라와 있는 박형준의 『4차 산업혁명과 기본소득의 미래Ⅰ: 기본소득 사상의 역사』 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토머스 페인은 『토지 분배의 정의』에서 당시 영국 총리 피트(Pitt)가 밝힌 국가 예산의 추산치를 근거로 재분배 계획을 검토하였습니다. 또 「제안된 계획을 실행하고 공익에 이바지하도록 만들기 위한 수단」이라는 제목으로 실천 방법까지 제안해놓고 있습니다.

○ 『토지 분배의 정의』는 『토지 정의』 또는 『농업에서의 정의』 등으로 번역됩니다. 이 책은 분량이 많지 않아 번역본은 페인의 다른 저작과 함께(사실은 ‘끼워넣기’처럼) 출판되었습니다. 저는 ‘효형출판’에서 나온 『토머스 페인 상식』의 뒷부분을 참고하였습니다. 이런 얘기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기본소득을 이해하시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주십사고 부탁드리는 것이고,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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