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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무엇인가 ⑳

기사승인 2021.04.12  08: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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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연재] 고영주 /(전) 거제지역자활센터 실장

3. 기본소득

9) 기본소득 아이디어의 역사 ③ : 인클로저와 산업혁명 그리고 ‘사회문제’로서 일반대중의 빈곤이 ‘발견’된 시대

○ 제1의 물결 ② : 토마스 스펜스(Thomas Spence, 1750-1814)

토머스 스펜스는 토머스 페인과 동시대인이었고 페인만큼 유명하지는 않았으나 더 급진적이었던 인물로 평가됩니다. 그는 ‘자연권’이자 ‘정의’를 실천하는 방법으로서 기본소득을 제안하였습니다.

그의 제안은 토지를 공유자산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는 페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스펜스 사상의 밑바탕은 「토지 소유, 만인의 권리(Property in Land Every One’s Right)」에 대부분 들어있는데, 1775년 11월 뉴캐슬 철학회 강연문인 「토지 소유, 만인의 권리」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토지 소유와 자유가 동등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부정할 정도로 멍청한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은 모두가 바랄 만한 일입니다. ‧‧‧‧‧ 각자에게는 동등한 소유권이 있으며 각자는 자유롭게 자신을 유지할 수 있으며 이곳에 있는 동물, 과일, 기타 산물과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스펜스가 1797년에 발간한 「유아의 권리(The Rights of Infants)」는 페인의 『토지 정의』를 비판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그가 보기에 페인의 주장은 온건했던 것이지요. 그의 글들이 매우 격정적이었던 까닭은 페인에 대한 존경심과 경쟁심, 그리고 어린 시절의 경험, 즉 제2차 인클로저 운동으로 인해 농업 노동자와 공유지 점유자가 생계수단을 박탈당하게 되었던 시대 상황과 맞물려 있었던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유아의 권리」는 한 여성과 귀족이 대화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여성은 귀족을 향해, 어린 아이를 불 속에 던져 제사를 지내게 했다고 전해 오는 고대 셈족의 화신(火神)인 ‘몰록(Moloch)’이라 칭합니다.

“이 사악한 몰록들아! 뻔뻔하게도 너는 저주받은 불한당 무리이며, 학살과 억압으로 대지의 소유권(lordship)과 지배권(dominion)을 찬탈하여, 울고 있는 유아와 그 불쌍한 어머니들을 배제하고 기아로 몰아넣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기껏해야 그렇게 부정하게 얻은 소유자의 구매자가 아닌가? 아, 몰록보다 사악하구나!”

또 그는 페인과 다르게 토지의 공유를 통해 불평등의 해결책을 모색합니다. 스펜스가 「토지 소유, 만인의 권리」에서 주장하는 불평등이란 자연 상태에서 공유자산이었던 토지를 소수가 찬탈하고, 다수가 별다른 의문 없이 설명조차 듣지 못한 채, 소수들에게만 토지가 분배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의 문제 제기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유아의 권리」에서 서술하고 있는 기본 증여의 재원 마련 방안입니다.

“우리 여성은 모든 교구에서 여성으로 이루어진 위원회를 임명하여 이미 임대된 주택과 토지의 임대료를 받게 할 것이고, 이후에 비게 되는 농장과 주택을 7년 기한으로 가장 높은 금액을 써내는 입찰자에게 임대하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4분기마다 들어오는 임대료는, 세금 대신 국가의 필요에 따라 상당한 돈을 정부에 보내고, 주택을 짓거나 수리하는 건축업자와 노동자들 그리고 행정관과 공무원에게 돈을 지불하며, 거리를 포장하고 청소하고 밝히는 데 지출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또 사분기마다 교구의 모든 사람에게 분배되는 이 잉여분은 징수된 임대료 총액의 2/3는 충분히 될 것이라 판단하는데, 잉여금의 분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모든 공적 지출을 처리하고 난 후, 잉여분과 관련해서 우리는 교구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배분할 것이다. 남자건 여자건, 결혼했든 독신이든, 적자이건 서자이건 상관이 없으며, 막 태어난 아기부터 아주 노령까지 분배할 것이며, 부유한 농부와 상인 가족과 소규모 공동주택•오두막•정원에 적은 돈을 지불하는 가난한 노동자를 구분하지 않고 분배할 것이다.”

스펜스의 주장들을 요약하면, ‘귀족과 영주 제도를 종식하고, 모든 토지는 전반적으로 자치에 의해 운영되는 민주적 교구가 공적으로 소유하며, 교구 내 토지의 지대는 교구민들 사이에서 동등하게 분배하고, 교구 차원과 교구에서 선출된 대리인단 체제를 통한 국가 의회 모두에서 보통 선거권(여성의 선거권)을 보장하며, ‘사회보장금(social guarantee)’을 확장해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소득을 제공하고,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여 학대와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스펜스는,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고 상속분의 1/10에 해당하는 상속세를 ‘기본 증여’의 재원으로 제안했던 페인보다 훨씬 급진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제1의 물결 ③ : 푸리에, 샤를리에, 위에, 밀, 헨리 조지

제1의 물결 시기에 여러 종류의 기본소득 구상들, 그리고 이와 접점을 갖는 사상들이 있었습니다.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 1772-1837), 조제프 샤를리에(Joseph Charlier, 1816-1896), 프랑수아 위에(François Huet, 1814-1869),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 등의 인물들도 직•간접적으로 기본소득의 밑바탕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염두에 두어야 하는 점은 이들이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하는 시대적 배경과 상황에 대한 물음일 것입니다. 각 인물의 생각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먼저 푸리에는 “최초의 권리는 사람이 배가 고플 때 먹을 권리, 즉 생계를 유지할 권리”이므로 “사회기구는 국민들에게 최소 생계를 보장할 의무를 갖는다”는 전제 아래 “문명이 이 최초의 권리를, 즉 수렵•어로•채집•방목의 권리를 박탈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이를 보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푸리에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생산수단과 결합되어 있는 ‘노동의 권리’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이것이 페인과 스펜스가 기본소득과 관련하여 공유자산으로서의 토지의 본성을 강조한 것과 차이가 나는 지점입니다.

조제프 샤를리에는 그의 「자연법에 기초한 인도주의적 헌법」의 제2조에서 “생명의 보존에 대한 권리를 향유하는 것은 세계를 통치하고 모두의 공동 세습재산을 구성하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근본적인 요소를 제공하는 최고법(la loi supreme)에 의해 보장”되는 네 가지를 빛을 주는 태양, 숨쉴 수 있는 공기, 갈증을 풀어주는 물, 먹을 것을 주는 토지로 분류하였습니다.

샤를리에의 공동 세습재산이란 현대의 용어로는 공유자산에 해당하는데, 제3조에서는 “신의 작품인 이 세습재산에 대한 개별 소유권은 수립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인간은 토지의 사용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며 공유자산에 대한 사적 소유가 불가한 이유를 밝힙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BIKN)의 상임이사인 안효상은 “1848년 조제프 샤를리에가 제안한 토지 배당금은 현행 소유 제도의 경우 토지 소유자가 자연을 찬탈한 것에 기초하고 있으며, 잃어버린 자연권에서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이끌어냈다”고 평가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프랑수아 위에는 1853년, 상속세와 증여세로 재원을 마련해 모든 성인 청년에게 조건 없이 넘겨주자고 주장했습니다. 위에의 주장은 토머스 페인의 주장, 즉 상속세를 재원으로 21세가 된 청년들에게 ‘기본 증여’를 하자는 구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또, 공리주의자로 유명한 존 스튜어트 밀은 『정치경제학 원리』 2판에서 “분배에서, 특정한 최소치는 노동을 할 수 있든 없든 상관없이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생계를 위해 먼저 할당”되고, “생산물의 나머지는 노동, 자본, 재능이라는 세 요소들 사이에서 사전에 결정되는 특정한 비율로 분배”되어야 한다고 했지요.

밀은 사적 소유가 자연이나 하나님이 만든 제도가 아니며, 이는 인간이 만든 관습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치경제학 원리』에서 그는 “전적으로 공공의 편의에 달린 문제다. 사적 소유가 ‧‧‧ 공공의 편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이는 ‧‧‧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라고 서술하였습니다.

헨리 조지 역시 토지가 공동 자산이며 모든 사람은 거기서 나오는 지대소득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모든 개인 토지에 토지 임대료를 부과하고 잉여를 모든 사람들에게 직접 분배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지대를 토지 사용에 대한 것으로만 한정시키지 않는 현대에 와서, 헨리 조지가 부당하다고 여겨 반대한 특허권 같은 지적 재산에서 발생하는 지대소득은 폭증하고 있습니다. 이에 기본소득 옹호론자들은 그의 주장을 확장해 모든 형태의 지대에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 제1의 물결 ④ : 『뒤를 돌아보며!』 & 『어디에도 없는 곳에서 온 뉴스』

에드워드 벨라미(Edward Bellamy, 1850-1898)는 소설 『뒤를 돌아보며!(Looking Backward!)』를 1887년에 출간하였는데, 1888년에 재출간한 이후 가장 인기 있는 소설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소설은 모든 시민에게 동동한 소득을 주는 2000년의 미국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내용은 1887년에 최면에 빠진 젊은 보스턴 사람 줄리안 웨스트(Julian West)가 2000년에 깨어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를 깨운 의사(Dr. Leete)와의 대화에서 그는 자신의 세기에 상상할 수 없었던 이상적인 미래의 모습에 대한 얘기를 듣습니다. 다음은 그것의 일부입니다.

“ …그렇다면 서로 다른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주어지는 신용의 총액은 어떻게 결정합니까? 개인은 어떤 권리로 자신에게 돌아올 몫을 주장합니까? 그 분배의 근거는 무엇인지요?”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권리는 그 사람이 지닌 인간성이오.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그 사람이 인간이라는 사실이지요.” 리트 박사가 대답했다.

소설 속의 2000년엔 범죄, 전쟁, 개인적인 적대감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남녀의 평등한 삶은 당연하며, 메시아적인 형제 사랑이 효력을 발휘하는 사회입니다.

개렛 대시 넬슨(Garrett Dash Nelson)에 따르면,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유토피아적 판타지는 존 듀이(John Dewey),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과 같은 사상가들, 유진 빅터 뎁스(Eugene Victor Debs), 노먼 토마스(Norman Thomas)와 같은 정치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또한 도시 계획가, 조경 계획자와 디자이너, 심지어 뉴딜 정책의 입법자 가운데 일부에게까지 자극을 주었다고 합니다. 훗날 에리히 프롬은 벨라미가 “산업사회에서 인본주의의 성취에 대한 가이드를 제공”했다고 썼지요. 다음은 넬슨의 평가입니다.

“벨라미의 유토피아는 서구 도시가 명백히 위기에 처한 순간, 그리고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자신의 학문을 조직할 수 있는 정치적, 도덕적 목적을 찾고 있을 때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도 벨라미에 자극받아 1890년에 소설 『어디에도 없는 곳에서 온 뉴스(News from Nowhere)』을 썼습니다. 그의 이 소설은 미래인 1956년을 배경으로 잉글랜드의 협동조합 공예 기반 사회를 묘사하고 있는데, 기본소득을 지급받는 사람들이 ‘사장을 위한 노동(labour)’이 아니라 ‘창조적 행위로서의 일(work)’을 추구하는 사회를 그리고 있습니다.

오봉희는 논문 「유토피아에서 온 소식: 모리스의 유토피아관과 문학관」에서 “모리스가 보기에 문제의 핵심은 ‘노동에서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고 노동에서 겪는 고통의 최소화는 ‘사람들이 생활 조건에서 진정으로 평등할 때’ 가능하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리스는 ‘생활 조건에서의 진정한 평등의 실현’을 위해 기본소득의 보편적 지급을 상상했던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소설들에 대해 스탠딩은 “20세기 초반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의 재미 없는 ‘노동주의’ 속에서 상실될 일에 대한 전망”이었다고 분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소득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공산주의의 열정과 사회민주주의의 온정주의가 분출하면서 주변화되고 말았다”는 것이 그의 판단입니다.

그러나 100년 가까이 잊혔던 이러한 상상들은, 21세기에 들어서서 전 세계를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그런 것일까요?

<참고>

○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저작들이 방대한 만큼 공리주의자, 자유주의자 심지어 사회주의자로까지 말해지기도 합니다. 설왕설래가 많지요.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절충적 인본주의자’로 결론 내린 E. K. 헌트의 견해가 가장 적합해 보입니다.

○ E. K. 헌트는 『경제사상사』에서 밀에 대해 “그는 정의롭지 못한 상태와 극심한 빈부격차를 혐오했지만, 그 혐오가 자본가의 이윤 수취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합리화를 완전히 버릴 만큼 크지는 않았던 사람으로서, 절충적 인본주의자였던 것이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 또 밀은 벤담 식의 공리주의에 있어서 두 가지 근본적인 공준을 거부했습니다. 두 가지는 ‘(1) 인간의 모든 행동 동기를 쾌락을 좇는 자기 이익으로 환원할 수 있다. (2) 각각의 사람은 자신의 쾌락이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며 따라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쾌락을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입니다. 밀은 인간의 모든 행동 동기가 자기 이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단지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격이 경쟁적인 자본주의 문화에서 형성되는 바람에 경제활동에 있어 자기 이익에 입각하여 행동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 『뒤를 돌아보며!(Looking Backward!)』는 손세호가 소설의 전체가 아니라 발췌하여 번역한 『뒤를 돌아보면서: 2000-1887』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있습니다.

○ 『어디에도 없는 곳에서 온 뉴스(News from Nowhere)』를 박홍규는 『에코토피아 뉴스』로, 오봉희는 『유토피아에서 온 소식』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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