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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무엇인가 ㉔

기사승인 2021.05.14  14: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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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연재] 고영주 /(전) 거제지역자활센터 실장

12) 기본소득 아이디어의 역사 ⑥ : 경제학 & 휴머니즘 그리고 ‘잠정적 유토피아’

제임스 미드와 에리히 프롬을 ‘제2의 물결’에 한정된 인물로만 보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 까닭은 가이 스탠딩이 1차대전 이후부터 1950년대까지로 대략 정했던 ‘제2의 물결’ 시대부터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고, 평생에 걸쳐 기본소득에 천착했다는 데 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기본소득을 주장했다가 이후 침묵했던 이들과는 결이 다르다는 거지요.

또한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유토피아들, 즉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나 ‘공산주의’ 그리고 ‘시장 만능주의’ 등의 허망하고 비현실적인 ‘개꿈(궁극적 유토피아)’이 아니라, 현실을 딛고 서서 현실의 부정적인 열망인 혐오•실망•절망을 완화하고 개선해보려는 ‘잠정적 유토피아’를 지향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제임스 미드의 혐오와 절망의 대상은 실업과 빈곤이었고, 에리히 프롬의 그것은 자본주의가 가져온 인간의 소외였습니다. 전혀 다른 지적 기반을 가진 두 사람의 또다른 공통점 한 가지를 현대적 언어로는 ‘기본소득’이라고 부릅니다.

○ 제2의 물결 ⑤ : 제임스 미드(James Edward Meade, 1907-1995)

옥스퍼드대학교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경제학 교수였고, 1977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미드도 더글러스와 콜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미드는 죽을 때까지 더글러스가 제기한 ‘국민 배당’과 ‘사회 신용’, 그리고 콜의 개념인 ‘사회 배당’을 계속 사용하며 기본소득을 옹호하였습니다.

콜은 신 페이비언 연구 모임을 이끌며 여러 진보 지식인들과 함께 사회정책과 경제계획을 융합하려는 시도를 펼쳤습니다. 이들은 콜 그룹(Cole group)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제임스 미드도 콜 그룹에 속해 있었습니다.

‘사회 배당’이라는 아이디어는 1935년에 출간한 그의 책 『노동당 정부를 위한 경제정책 개요』와 초기 저작들뿐만 아니라 마지막 저서에 이르기까지 효율적이고도 공정한 경제의 핵심 구성요소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가 일평생 천착했던 핵심적 문제의식은 ‘사회 신용’과 국민 배당을 주장한 더글러스와 마찬가지로 균형 있게 성장하는 거시경제 모델 속에 사회정책을 융합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사망에 이르기 불과 2년 전인 1993년에 출간한 『자유, 평등 및 효율성(Liberty, Equality and Efficiency)』이라는 책의 제목을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1930년대에 대공황을 겪으면서 불황을 해결하려는 핵심적인 수단으로 사회배당을 생각했다면,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경기 불황 상태에서도 물가가 계속 오르는 현상) 속에서는 케인즈주의의 한계를 넘어 위의 세 가지, 즉 자유와 평등 그리고 효율성을 조화시켜내는 방법으로써 사회배당에 천착하였습니다.

자유와 평등, 효율성은 그가 상정하는 세 가지의 경제 목표들인데, 책의 서문에서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사항들은 어떤 식으로든 다음 세 가지 기본적인 경제 목표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가피한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경제정책과 제도의 선택과 관련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가 서술한 세 가지 경제목표를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자유(Liberty)입니다. 시민들이 시장에서 직업을 선택하고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자유(Liberty)인 것이지요. 그러나 불평등한 관계에서는 힘이 정의인 것처럼 출발 지점이 현격하게 차이 나는 상태에서의 자유는 강자들만이 승리하는 게임의 규칙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의 결과로 나타나는 엄청난 부의 편중과 나란히 존재하는 참을 수 없는 빈곤, 즉 극심한 불평등을 막는 평등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둘째는 평등(Equality)입니다.

셋째는 가용한(쓸 수 있는) 자원을 사용하여, 기술적으로 가능한 최고의 평균적인 삶의 수준을 창출하는 방식으로서의 효율성(Efficiency)입니다.

미드가 밝혔듯이 현실은 이 세 가지 목표 사이에 ‘불가피한 충돌’이 일어나는 전장이었습니다. 또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의 원인이 단순히 임금상승에 있지는 않을 터이지만,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인한 실업률 상승이 커다란 골칫거리임에는 분명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같은 책에서 “오직 ‘균형 실업률’의 수준을 낮춤으로써만 영구적이고 지속적인 실업의 감소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방법은 임금결정과 가격결정 관련 정책과 제도의 개혁을 포함한다. 그를 통해 경제활동 수준과 고용을 실질임금의 인상 비율에 대한 요구가 실질 노동생산성의 증가를 초과하지 않는 수준까지 높아지게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합니다.

다시 설명하자면, 실업률을 낮추면서도 임금과 물가 사이의 악순환을 없애려면, 투자와 생산의 확대 과정에서 나타나는 한계생산성 하락과 그에 따른 차등적 임금을 노동자가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쉽게 말해, 숙련도가 떨어지는 노동자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아닌 더 낮은 임금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럴 경우 ‘평등한 분배’에 문제가 생기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직접적으로 임금에 묶여 있는 소득을 줄이고, 직접적으로 임금에 묶여 있지 않은 소득의 양을 상당 수준 증가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즉, 사회배당을 도입하는 것이었지요.

만일 미드의 주장이 바람직하다면 “임금 노동에 직접적으로 묶이지 않는 소득을 분배해줄 원천은 어디에서 찾을까?”라는 물음은 자연스럽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는 ‘재산-소유-민주주의(Property-Owning-Democracy)’라고 칭한 방법인데, 사적 재산의 소유를 최대한 평등하게 일반화하여 여기서 나오는 불로소득을 재분배의 원천으로 삼자는 내용입니다.

둘째는 이른바 재산의 ‘사회적 소유권(Social Ownership of Property)’으로서, 사적 소유에서 국가 소유로의 전환을 늘리고, 그 재산에서 나오는 소득을 국민들에게 분배하는 방법입니다.

셋째는 복지국가(Welfare State) 방식으로 임금소득에 붙는 소득세를 높여 그로부터 나온 돈을 재분배하는 방식입니다.

미드가 유토피아가 아니라 이상적인 균형 상태의 경제모델을 일컫는 표현으로 사용한 ‘아가소토피아(Agathotopia)’에서는, “이 세 방법 모두를 사용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김만권은 아가소토피아를 “비록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자산이 공동체의 시민들에게 평등하게 분배되어 사실상의 완전고용을 가능하게 만드는 좋은 사회.”라 칭하였습니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향(완벽한 청사진)으로서의 ‘유토피아’와 ‘완전고용’의 비현실성을 감안한다면, 아가소토피아는 현실적으로 접근 가능한 ‘잠정적 유토피아’의 설계도일 수 있다는 판단으로 보입니다.

○ 제2의 물결 ⑥ :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 1900-1980)

에리히 프롬은 1955년에 출간한 『건전한 사회(The Sane Society)』와 논문 「보장된 소득의 심리학적 측면들(The Psychological Aspects of the Guaranteed Income)」 그리고 『희망의 혁명』에서 ‘보편적 최저생활 보장’을 주장했습니다.

학자로서 프롬이 천착했던 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미래는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프롬은 “신이 없더라도 인간 내부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인간에게 목적을 주는 존재가 있다”고 말했는데, 그것이 바로 휴머니즘(인본주의)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생명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프롬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았으나 프로이트와 달리 인간 심리에 대한 사회적 요소의 역할에 주목했고, 개인의 인성을 생물학적 조건뿐만 아니라 문화의 산물로 이해했습니다. 또한 인간의 악덕은 사회의 조건을 개혁함으로써 감소시킬 수 있으며, 심리적으로도 균형 잡힌 ‘건전한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에서, 그는 “인간이 품위를 유지하면서 존재하기 위해 기초가 되는 소득은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주어져야 하며 사회보장제도를 ‘보편적인 생존의 보장’으로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건전한 사회』를 통해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보장소득의 심리학적 측면들」과 『희망의 혁명(The Revolution of Hope)』에서는 보편적 생존 보장 방법으로서 ‘보장소득’을 지지했습니다.

프롬에게 있어서 ‘소외(疏外)’라는 개념은 ‘내버려진다는 것’이고, 자기가 손수 만들어 놓은 것들로부터 내버려진 채 질곡에 빠지는 상태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는 『건전한 사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과 공포의 확신, 의심 등을 가진 인간으로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체제에서 어떤 기능을 충족시키고 있는, 자신의 진정한 본질에서 소외된 텅 빈 존재로서 자신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의 가치 관념은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 ‧‧‧ 확실히 가치 관념은 항상 그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고 외부적인 요인, 즉 시장의 변덕스러운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 팔려고 내놓은 이 같은 소외된 인간은 가장 원시적인 문화에서조차도 인간의 특성이라 했던 그 인격의 존엄성을 몽땅 상실할 수밖에 없다.”

이 글의 뒷부분을 제 방식으로 해석하자면, 인간의 소외는 임금노동만이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어지고, 노동시장에 내버려져 시장의 출렁임에 따라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상황, 즉 외부환경이 자유의지를 완전히 제거해버린 상황으로 보입니다.

또 그가 보기에 인류사에서 현재까지 인간은 행동할 자유를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제약받았는데, 첫째는 지배자의 강제력 사용(본질적으로 반대파를 살해할 수 있는 지배자의 능력)이고, 둘째는 부과되는 노동과 사회적 존재의 조건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가해지는 기아(굶주림)의 위협입니다.

프롬의 이 같은 통찰은 시장 근본주의자들, 즉 신고전학파가 인간의 행동 동기를 “굶주림에 대한 공포와 이익에 대한 탐욕”에만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지배자의 논리’임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프롬은 「보장소득의 심리학적 측면들」에서, 보장소득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이것이 개인의 자유를 크게 증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같은 논문에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보장소득은 자유를 구호가 아니라 현실로 확고히 할 뿐만 아니라 ‧‧‧ 다음과 같은 원칙을 확고히 할 것이다. 인간에게는 어쨌든 살아갈 권리가 있다! 이러한 권리, 즉 살아가고, 음식, 주거, 의료, 교육 등등을 가질 권리는 내재적인 인권이며, 어떤 조건에 의해서도, 심지어 그가 사회적으로 ‘유용’하지 않을 경우에도 제약될 수 없다.”

○ 제2의 물결 ⑦ : 줄리엣 라이스-윌리엄스(Juliet Rhys-Williams, 1898–1964), 찰스 마셜 해터슬리(Charles Marchall Hattersley, 1892-1952), 휴이 롱(Huey P. Long, 1893-1935)

줄리엣 라이스-윌리엄스는 베버리지와 동시대 인물로 사회운동가이자 자유주의 정치가였습니다. 그녀는 1943년에 「고대하는 어떤 것. 새로운 사회계약을 위한 제안(Something to Look Forward To. A Suggestion for a New Social Contract)」이라는 글에서 베버리지 계획의 난점을 비판하면서 보편적 성격의 수당을 제안하였습니다.

줄리엣 라이스-윌리엄스는 “민주적 원칙, 즉 국가는 모든 시민에게 정확하게 동일한 혜택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노동의 동기를 중요시하는 태도와 노동을 고용노동으로 한정해서 이해하는 한계 때문에 오늘날의 기본소득 원칙과는 제법 거리가 있습니다.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였던 찰스 마셜 해터슬리는 더글러스의 영향을 받아 사회신용 이론을 대중화하고 이를 실현하는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해터슬리는 1922년에 『공동체 신용(The Community’s Credit)』을 펴냈고, ‘노동’을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일정한 몫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권리를 창출하는 것으로 보는 기존의 경제학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현대 산업 생산은 자본, 노동, 공동의 문화유산이라는 세 가지 요소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에 따라 생산에 기여한 개별적 보상(임금, 급여 등)과 더불어 ‘공동의 문화유산’이 기여하는 몫을 모두가 국민배당으로 분배받아야 한다는 논리의 정당성을 확보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노동주의적 복지국가가 부상하고 있었고 프롬을 비롯한 줄리엣 라이스-윌리엄스, 해터슬리 등의 여러 목소리는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다만, 더글러스와 해터슬리의 사회신용 운동은 캐나다와 뉴질랜드 등의 ‘사회 신용 당’의 창당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시기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도 기본소득 운동이 있었습니다. 1930년대 초 루이지애나의 민주당 상원의원이었던 휴이 롱은 당시의 대공황으로 더욱 심화된 빈곤 문제의 원인이 생산물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소수에게 집중된 부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롱은 “모든 사람이 다 왕(Every Man a King)”이라는 모토 아래, “우리의 부를 나누자(Share Our Wealth)”는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는 1934년 한 라디오 연설에서 자신의 계획을 밝혔는데, 그 계획의 목적은 최상층에 집중된 부를 제한하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소득을 재분배함으로써 공황을 끝내자는데 있었습니다.

롱은 “어떤 가구도 연간 소득이 2000달러에서 2500달러 아래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보장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우리의 부를 나누자’ 운동은 2만 7000개의 지부와 700만 명에 달하는 회원을 확보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롱은 대중적 인기 상승에 힘입어 1935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고, 그 직후에 암살당하는 비운을 맞았습니다. 그의 암살 이후 한동안 보장소득 혹은 기본소득 논의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다음은 그의 연설문 중 일부입니다.

“오늘날 미국에는 모든 사람이 먹고 남을 만큼의 온갖 식량이 있고, ‧‧‧ 모든 사람이 입고 남을 만큼의 의복과 의복 재료가 있으며 ‧‧‧ 모든 사람들에게 최고의 안락한 가정생활을 제공할 집들이 이미 건설되어 있으나 (그리고 더 많은 집을 지을 풍부한 재료가 있으나) ‧‧‧ 돈의 주인들의 욕심, 탐욕, 이기심이 이 모든 훌륭한 물품들을 장악해 왔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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