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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가능한가 ㉘

기사승인 2021.06.11  16:3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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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연재] 고영주 /(전) 거제지역자활센터 실장

1) 기본소득이 넘어야 할 벽들 ② : 노동의 가치와 노동 윤리의 변화

“저는 가장 적게 일하고, 가장 많이 누리고 싶어요. 기업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많은 이윤을 올리면 칭찬받는데, 왜 우리는 그러면 안되는 거죠? 그냥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만큼하며 살고 싶어요!” - 김만권의 정의론 강연회에서 어느 여고생이 한 말

개인적인 여담을 잠깐 하자면, 이 글을 읽고 감회가 참 새로웠습니다. 웃음이 ‘빵’하고 터지기도 했지요. 제가 스무 살 시절에 가졌던 생각이었으니까요. 예를 들어 두 가지 경우를 가정해봅시다. 첫째, 하루 온종일 작업장에 나가 근면 성실하게 임금을 벌어들이는 일과 둘째, 안정적이라는 가정하에 한 달 수익이 최소 500만 원 이상 생기는 주식투자. 이 가운데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려 하고 어떤 것을 자랑스러워 할까요?

경제학 교과서는 기업은 적은 비용과 노력으로 큰 성취를 이루는 것이 당연하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노동자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습니다. 다만 노동자들에게는 근면 성실해야 한다는 노동 윤리와 사회적 압력이 작동됩니다.

○ 노동의 가치

그렇다면 근면 성실이라는 말이 좋지 않은 말이냐? 노동이 나쁘냐? 노동이 가치가 없냐? 이 세 가지 질문 모두에 대한 응답은 당연히 ‘아니오’입니다.

근대에 들어 노동의 가치를 정식으로 먼저 언급한 사람은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로 보입니다. 로크는 1689년에 쓴 『통치론(Two Treaties of Government)』에서 이렇게 말했지요.

“그의 신체의 노동과 손의 작업은 당연히 그의 것이라 할 수 있다. ‧‧‧ 그가 자연 안에 놓여 있는 것에 자신의 노동을 섞어 자신의 것을 보태면, 자연의 대상물은 노동한 자의 소유가 된다. ‧‧‧ 자신의 노동으로 땅을 획득하는 사람들은 인류의 공동자산의 가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대시키는 것이라는 논점을 덧붙이고자 한다.”

로크에게 있어 사적 소유의 유일한 근거는 노동입니다. 노동이 실질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행위라는 겁니다. 다만, 로크에게 있어서 노동의 가치란 아메리카 원주민을 배제한 채, 자연 상태로 가정한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침탈을 정당화시키는 논리에 더 가까웠다는 것을 염두에 두기는 해야 합니다.

사실 인간의 노동은 인간과 자연이 관계를 맺는 과정이었고, 자연에 노동을 부여하여 자연을 변화시킴과 동시에 인간 스스로의 본성도 변화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인간의 생산활동은 자연과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이루어졌고, 또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내부에 잠재해 있던 놀라운 창조력을 발견하고 발현시켰습니다.

이렇듯 노동은 그 자체로 훌륭한 것임에 분명한데, 이러한 사실을 가장 잘 정리해낸 사람은 로크와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의 ‘노동가치론’을 물려받은 카를 하인리히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였습니다.

냉전 시대, 특히 우리나라에서 거의 악마화되기도 했던 마르크스이지만 선입견을 털어내고, 그가 ‘인간적인 방식으로 이상적인 노동을 할 때 얻게 될 수 있는 네 가지 결과’를 스스로 갖고 있는 노동에 대한 개념과 비교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1) 생산과정에서 자신의 창조성을 즐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물건을 만듦으로써 자신의 개성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

2) 자신이 만든 물건을 타인들이 사용하는 것을 보며, 자신의 노동이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부응했다는 효능감을 얻을 수 있다.

3) 다른 사람들이 내가 만든 물건을 자신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것을 보며 자신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느끼게 되고, 이런 느낌을 통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4) 노동을 통해 내 삶을 표현함과 동시에 타인들의 삶의 표현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인류의 한 부분이라는 본질, 즉 자신의 공동체적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마르크스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눌러 앉혀 놓고 위 네 가지를 보면, 우리가 노동의 가치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관념과 너무도 비슷합니다. 또한 소스타인 베블런이 말하는 ‘제작자 본능(The Instinct of Workmanship)’과도 매우 흡사합니다.

그리고 제1의 기계시대 이전, 즉 자본주의 이전의 시대에서의 노동의 대부분은 자신의 집 가까이에 있는 농토에서 이루어졌고, 노동 시간 역시 자연의 주기에 맞춰 유동적이었으며, 자신의 신체적 역량에 맞추어 스스로 노동 강도를 조절할 수 있었고, 따라서 노동 전반을 통제할 수가 있었습니다.

물건을 만들어내는 일뿐만 아니라 생계를 위한 노동에서도 자기 통제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베블런의 ‘장인(제작자, 일꾼) 본능’이 발현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지요.

○ 자본주의 시대의 노동 윤리

하지만 자본주의에서의 현실적인 노동은 마르크스가 얘기한 이상과는 판이하게 다른 형태로 전개되었습니다. 베블런이 말했던 ‘장인 본능’은 억압된 상태로, 발현할 수 없는 상태로 남아있게 됩니다. 자율적인 노동에서 강요된 노동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노동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본소득은 가능한가 ㉗’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애초의 인간은 근면 성실, 즉 매일매일 열심히 노동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외력이 가해질 때만이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이런 양상은 근대에 접어 들어서도 바뀌지 않았다고 합니다.

18세기에 수력을 이용한 방적기를 만들었던 리처드 아크라이트(Richard Arkwright, 1732-1792)는 사람들의 노동 습관에 굉장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다음과 같이 말이지요.

“‘사람들이 들쑥날쑥한 노동 습관을 버리고 정교한 기계작업의 일관된 규칙성을 따르도록 가르치는 일’은 어려웠다. 정교한 기계작업이 능률적으로 이용되려면 지속적인 감독이 필요했다. 그러나 시골 사람들은 하루에 열 시간 넘게 공장에 갇힌 채 기계를 쳐다볼 생각이 없었다.”

1936년에 제작된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Modern Times)의 장면들이 겹쳐 떠오를 수도 있는 글이지만, 어쨌거나 이 시기의 사람들은 하루에 열 시간 이상을 공장에서 일하는 데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들과는 달리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값싸게 일할 사람들과 노동력이 필요했지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노동 윤리였고, “열심히 일하라.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일하지 않는 자는 부도덕한 인간이다.”라는 도덕률이 인류 역사의 전면에 부상한 순간이었습니다. 기존에 존재하던 계급 간의 차별의식이 자본가들의 필요와 결합하여 노동(임금 노동)하지 않는 사람을 타락한 자로 만들어 버렸고,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해버렸던 것입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에 따르면, 빈곤층을 노동하게 만드는 것과 스스로 게으른 자들을 노동하게 만드는 것이 경제적 과제이자 도덕적 과제였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최악의 실행 방법은 파놉티콘(Panopticon)이었습니다.

파놉티콘은 1791년 영국의 벤담(Jeremy Bentham)에 의해 제안된 원형 감옥을 말합니다. 파놉티콘은 원형의 복층 감옥의 가운데에 감시탑을 두어 최소한의 인원으로 감옥에 있는 모든 수감자를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구조를 말합니다.

이 파놉티콘은 벤담의 추종자로 알려진 라클런 매쿼리 총독이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를 연상시키는 신형 교도소를 건축해 죄수 관리를 하였고, 미국 일리노이 주의 스테이트빌 교도소 등에서도 그 기본 개념이 반영된 건축 양식이 도입되었습니다.

또한 벤담은 ‘근면의 집들(Houses of Industry: 노역소, 빈민원, 공장, 감옥, 학교, 정신병원 등)’이 똑같은 원리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면의 집들은 벤담과 같은 자들이 보기에 ‘천방지축(?)인 입소자들’에게 규칙적이면서 획일적인, 즉 그들이 원하는 ‘예측 가능한 행동 방식’을 강요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즉 ‘노동 규율’을 강제로 이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이지요.

특히 벤담이 ‘쓰레기’ 또는 ‘찌꺼기’라고 불렀던 빈곤 계층들을 수용한 곳인 빈민원(Workhouse)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원리로 움직였습니다. 영국의 작가 찰스 디킨스가 1838년에 발표한 장편소설인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의 주인공인 올리버가 맞을 각오를 하고(또는 대표로) “죽 좀 더주세요”라고 원장에게 말했던 곳, 그 빈민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근현대 자본주의에 있어 파놉티콘적 조직들이 주된 형태였다는 사실과 함께, 이러한 발상들이 ‘열등 처우의 원칙’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열등처우의 원칙이란 “구제대상 빈민의 생활 수준은 최하층의 독립 근로자의 생활수준과 같아서는 안 되는 조건”에서만 구제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생각은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이 더 궁핍해질수록,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낫다’는 인식을 갖게 하고, 그래서 지금의 상황을 최소한 ‘견딜 수 있을 만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끔찍한 공장 생활이 할 만한 것인지를 비교할 수 있는 대상으로 노역소와 빈민원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고용주들은 노동 거부나 폭동에 대한 두려움 없이 노동자들의 인내심을 시험해 볼 수 있었던 것이지요.

결국 강제된 노동 윤리를 받아들인 사람들의 운명이나, 노동 윤리의 가르침에 따라 살고자 노력하다가 밀려난 자들의 운명은 사실상 거의 비슷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앞서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을 짧게 소개하였습니다만, 마르크스의 강령을 받아들인 소련이나 20세기 복지국가들의 핵심 내용, 그리고 생산적 복지를 지향했던 1980년대 이후의 흐름 역시 근본적인 측면에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소련에서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대신 새로운 특권층인 공산당원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귀족과 자본가를 대신했다면, 사회보험이라는 수단을 동원한 20세기 복지국가들은 ‘노동을 조건으로 한 연대 의식’을 바탕으로 했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노동 윤리는 노동을 철저히 개인의 문제로 다시 바꾸어 버렸다는 점이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노동 윤리에 대한 새로운 발상

과거의 특권 계층들이 보통 사람들의 여가는 사치라고 생각하면서 자신들의 여가는 권리이자 누려야 하는 가치로 생각했다면, 이를 뒤집어버린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였습니다.

포드는 1914년에 당시 제조업체의 평균 일당 2.34달러의 2배가 넘는 5달러를 최저임금으로 책정했고, 하루 노동 시간을 8시간으로 단축시켰습니다. 또 연말에는 이익분배금으로 1,000달러씩을 지급하기도 했지요.

그의 생각은 간단했는데,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노동자들이 여가 시간이 있고 피곤하지 않은 상태이며 소득이 충분해야 자신이 만든 자동차를 구매해서 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포드가 ‘대중을 위한 자동차, 가격이 저렴해서 중산층도 구입할 수 있는 자동차’인 T형 모델을 집중적으로 생산하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둘째는 당시의 공장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부지기수였던 점, 구체적으로는 1913년까지 포드자동차 노동자의 이직률이 380%에 달했던 상황을 타개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이 생각은 적중했고, 그 이후의 미국 자동차 산업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섰던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런데 언론사, 경쟁업체, 은행들은 이 모든 것을 ‘경제적 범죄 행위’로 규정하고 공격했습니다. 반면에 노동자들은 “마르크스 대신에 포드를!”이라고 외치며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비노동계층의 생각과는 다르게 포드 자동차 공자의 생산성은 엄청나게 향상되었고, 이직률이 0에 가까워졌으며, 애사심의 고양으로 파업의 위기를 피할 수 있었고, 자동차 판매 대수가 급증하여 이후 3년간 1억 달러 이상의 순이익을 거두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포드 역시 ‘자수성가’한 사람답게 ‘노동 윤리’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던 사람이었으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선택한 고육지책이 그를 더 큰 성공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또 그가 의도하지 않았겠으나 노동자를 ‘소비자’로 인식한 거의 최초의 자본가가 되기도 하였던 것이지요.

물론 T형 모델만을 고집했던 포드의 정책은 1920년대 이후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가격을 낮추기 위한 노동 통제 강화, 유능한 인력의 해고, 포장도로에서의 쾌적함을 원했던 소비자들의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했던 점 등이 원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눈여겨보아야 할 1914년 이후 포드의 성공은, 벤담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아침부터 밤까지 이야기 나눌 사람 하나 없이 상한 빵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 말고는 아무 할 일이 없다. ‧‧‧ 그들이 최선을 다하게 하려면 이런 대우가 필수적이다.”라고 했던 노동 윤리를 오히려 뒤집으면서 획득하게 되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노동 윤리든 어떤 신념이든 경직된 것만큼 위험한 경우는 없을 듯합니다. 포드 역시 이에 해당합니다. 핵심은 ‘노동 윤리도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상황이 바뀌면 그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요.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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