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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물교환? 살벌함의 극치!

기사승인 2023.12.14  08: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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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 삼아 읽는 경제 이야기 : 화폐 ④

◐ 전투를 피하면서 교환하는 방법?

앞서 ‘화폐③’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내집단, 즉 한 부족이나 연맹을 맺고 있는 몇몇 부족들 간에는 호혜성을 갖는 선물 교환이 사회 전체와 개인의 일생에 걸쳐 원(circle) 형태를 이루면서 끊임없이 순환하는 구조를 갖는다는 걸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내집단 또는 공동체의 영역 바깥에서 필요한 물건을 조달해야 하는 방법의 하나인 물물교환은 내집단을 벗어난 ‘개인 대 개인’ 또는 ‘집단 대 집단’끼리 이루어졌을 거라는 추측도 쉽게 할 수 있겠지요.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서 “외부와의 교역이란 그 기원을 따져 보면 물물교환보다는 오히려 모험·탐험·수렵·해적질·전쟁 등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라고 서술한 대로 물건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일이 평화로움과는 거리가 멀었을 거라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게다가 인간의 본성상 낯선 사람과 외집단, 적(敵)을 경계하는 건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적으로 간주되는 두 집단이 서로 상대방의 물건이 갖고 싶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저들이 우리를 죽이거나 물건을 빼앗으려고 들지는 않을까?” 하고 의심하는 건 합리적입니다.

이런 경우에 전쟁하지 않고 물물교환을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 방법은 아예 대면 접촉 자체를 피하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거짓 사귐(交)’의 장(場)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 침묵교역(沈默交易)

침묵교역(silent trade)이란 말 그대로 일절 말을 하지 않은 채 물건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무언무역(無言貿易, mute trade)이라고도 불립니다. 침묵교역은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Herodotos)가 기원전 5세기에 썼던 『역사』에 처음으로 언급되었다고 합니다.

헤로도토스가 언급한 침묵교역은 아프리카 북부와 지중해 연안에 살았던 베르베르족이 행했던 것을 말하는데,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베르베르족과 다른 적대적 부족이 조개와 화살을 바꾼다고 합시다. 작은 언덕의 반대편에 두 부족이 있고, 언덕 꼭대기에는 올리브 나무 한 그루가 있는 풍경을 생각해 봅시다.

먼저 베르베르인이 언덕 위 나무 아래에 조개 한 소쿠리를 두고 내려옵니다. 그러면 다른 부족민이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화살을 두고 반대편 아래로 내려갑니다. 베르베르인은 다른 부족민이 내려간 후, 언덕에 올라 바꾸고자 하는 양이 적절한지 보고 화살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조개를 몇 움큼 덜어서 갖고 내려갑니다. 다시 다른 부족민이 올라와서 판단합니다. 만일 조개의 양과 화살의 양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면 조개를 들고 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화살 몇 개를 들고 내려갑니다.

두 부족이 바꾸고자 하는 적절한 양에 만족한다면 거래는 끝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이런 과정을 계속하거나 거래 자체가 끝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면 접촉이 없어야 싸울 일도 생기지 않으니까요.

이러한 방식의 교환 행위는 15세기 이후 유럽인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서아프리카에서 인도양 연안 지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예는, 중앙아프리카에서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피그미(Pygmies)족과 농경 생활을 하는 반투(Bantu)족 사이의 침묵교역입니다. 피그미족이 사냥한 짐승의 고기, 가죽 등과 반투족이 생산한 곡물, 철기류가 교환되었다고 하죠. 피그미족과 반투족의 경우, 미리 교환 장소를 정해 놓은 상태에서 위의 예와 같은 방식으로 침묵교역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스리랑카의 신할리족과 베다족 사이 그리고 수마트라, 시베리아, 모로코, 가나 등지에서도 침묵교역이 이루어진 사례가 보고되어 있습니다.

침묵교역이란 형태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서이거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 등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자칫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려는 고육지책이라는 점입니다.

◐ 거짓 사귐과 축제

지난 회에서 보통의 사람들이 내집단 구성원과 외집단 구성원들을 대하는 마음이 다르다고 얘기했습니다. 또 교환의 ‘교(交)’자는 ‘사귀다’가 본래 의미이며, ‘두 다리를 교차하며 춤추는 모습’에서 나왔다고도 했습니다.

교환(交換)에서 교(交)가 먼저이고 환(換)이 나중이니, 선물을 주고받든 교역을 하든 사람끼리의 사귐이 먼저이고 바꾸는 것은 나중이라는 해석이 가능할까요? 저는 그렇다고 봅니다.

기업과 기업이 거래를 틀 때, 영업 사원이 판촉을 나갈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거래 당사자와 친밀감을 쌓는 것이지요. 차를 마시든, 밥을 먹든, 술을 먹든 친분을 맺는 일을 먼저 합니다. 사실 이러한 친교 맺기는 거의 연극에 가까운데, 거래처 직원과 평생토록 친구로 남는 일은 매우 드물다는 사실이 이를 예증하죠.

그렇다면 우리가 원시사회라고 부르는 집단은 어떻게 했을까요? 다음은 데이비드 그레이브의 『부채, 첫 5,000년의 역사』에 소개된 내용 중 일부이고, ‘화폐③’에서 언급했던 브라질의 남비콰라 족과 관련된 얘기입니다.

이따금 어느 한 집단이 가까운 곳의 다른 집단이 요리를 하기 위해 불을 피우는 것을 보면, 그 집단은 다른 집단에 대표단을 보내 교역을 위한 만남을 타진한다.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그들은 먼저 여자들과 어린이들을 숲속에 숨긴 다음 다른 집단의 남자들에게 캠프를 방문해달라고 초대한다.

각 집단은 우두머리를 두고 있다. 모든 남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양측의 우두머리가 서로 상대방을 치켜세우고 자신을 낮추는 연설을 형식적으로 한다. 그런 다음에 모든 사람들이 무기를 내려놓고 함께 어울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비록 군사적 대결을 흉내 낸 춤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어서 각 집단의 개인들이 거래를 위해 서로에게 접근한다.
……
전체 거래는 축제 분위기에서 끝난다. … 만약 어느 한쪽이 훗날 이용당했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면 두 집단 사이에 쉽게 전쟁이 벌어질 수 있었다.

이 예에서 보듯 물물교환은 서로 적(敵)일 수 있는 집단들 사이에서 축제라는 ‘일회성 거짓 사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거래가 아니었다면 전투를 벌일 가능성이 큰 집단들끼리, 잠재적 적대감의 긴장 속에서 행해진다는 것이지요.

이보다 더 극적인 예는 호주 웨스턴 아넘 랜드에 사는 군윙구 족의 ‘차말라그(dzamalag)’라는 물물교환 의식입니다. 이 ‘차말라그’는 음악과 춤, 음식의 분배 외에도 성적인 교환이 적대감을 누그러뜨리고 전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내용을 소개하기에는 현대의 도덕관념과 거리가 멀고,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생략하겠습니다.

이처럼 물물교환이나 거래를 위한 흥정은 ‘사귈 교(交)’가 선행되지 않으면 매우 어렵습니다. 애초에 친밀함이 없었다면 ‘거짓 사귐’이라도 만들어내야 한다는 거죠.

어쨌든 물물교환의 형식을 취하는 모든 교역의 예들은 이방인들끼리, 적이거나 잠재적 적인 집단들끼리,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거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않을 집단들끼리 이뤄진다는 걸 보여줍니다. 당사자 집단 모두 서로를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는 사이에서 말입니다.

데이비드 그레이브에 따르면 “재화의 교환은 전쟁과 성욕, 모험, 미스터리, 섹스 또는 죽음” 등과 관계를 맺습니다. 인간의 삶을 결정짓는 다양한 요소들이 얽히고설킨 가운데, 즉 삶의 구성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재화의 교환이든 다른 무엇이든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관찰된 사실들은 주류경제학자들이 인간의 삶, 사회의 복잡성과 복합성을 외면한 채, ‘인간은 교환하려는 본능적 성향이 있으며, 물물교환을 하다가 불편해서 가치 중립적 화폐를 만들었다’ 따위의 주장과는 한참 괴리가 있습니다.

물물교환으로부터 화폐가 생기지 않았다면, 진짜 ‘화폐의 기원’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그 기원에는 인간다움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가장 불명예스러운 무언가가 있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

고영주 / 거제경실련 정책위원장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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