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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고 혼자 남았다

기사승인 2024.09.09  09: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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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애 /예인유치원 원장

초여름 햇살이 두껍다. 때 이른 무더위 열기가 대지를 뜨겁게 달군다. 마른 솔가지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노란 뱀딸기 꽃이 여리게 피어있다. 접두어 ‘뱀’만 쑥 빼면 영락없는 어감이 가련한 꽃이다. 꽃 피울 자리를 찾는 지천의 들꽃은 수북한 잎 사이의 양지를 찾아 서로 얼굴을 내민다. 노랗고 파랗고 화사하고 붉디붉어서 청순한 꽃이라 여름을 재촉하지 않는다. 열매를 달 때는 자연의 섭리에 옹골차면서 풋풋하다. 그렇게 숲의 생명체는 앞다투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큰맘 먹고 혼자 걸었다. 혼자 걷는 용감한 전사의 첫발이 묵직하다. 불볕 태양과 그늘을 남기지 못하는 대지의 열기와 사투를 각오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 걷는 길도 엄밀하게 생각해보면 나와 사투를 벌이고 나를 만난다. 남파랑길 47구간인 하동 노량대교 공영주차장에서 섬진강에 잇댄 ‘선소공원’까지는 14km 남짓 되는 길이다. 길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과 풀 섶에서 만날지도 모르는 뱀과 가뭄에 콩 나듯이 맞닥뜨리는 사람의 인연이 휙휙 스친다.

이른 새벽녘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아침을 가르며 자동차 페달을 밟았다. 도로변에는 풀잎에 맺힌 이슬이 찰지게 매달려 있다. 산 그림자가 빚어낸 능선의 우수가 곱다. 혼자만의 트레킹! 숨이 차오르지 않았고 잡다한 망상이 따라오지 않았고 언뜻언뜻 가냘픈 희열이 따라왔다.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보니 정신없이 살았고 앞만 보고 뛰었다. 저 속도로 질주하다 보니 나를 위로하고 토닥거릴 틈새가 없었다.

이제는 나를 돌아보아야 할 때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찬찬한 파도가 밀려와 모래톱을 적시듯이 이 속도로 고단했던 속마음들을 어루만져야겠다. 관계중심으로 촘촘하게 연결된 인맥 만들기도 잠시 멈추어야 한다. 눈뜨면 강행군하는 이대로의 삶이 좋은가. 나를 되돌아본다. 나와 마주하는 혼자 걷는 길의 만행이 그나마 더 나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이 길에서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어제의 나와 대화하는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어쩌면 내일의 나를 만나면 오늘의 나는 초연한 길에서 무욕의 정신적 해방을 이루리라.

지난 오월에 걸었던 남파랑길 숲에는 봄 향기가 가득했다. 오늘은 여름 맛의 진초록 잎과 풀향기가 깊게 배이고 채워졌다. 엄동을 밀어 올리고 봄을 디딘 풀꽃들이 두 손을 벌린다. 한꺼번에 자연생태계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여름 숲의 포식자 칡덩굴은 순식간에 숲의 점령자가 되어버렸다. 너른 잎사귀와 힘줄이 단단하고 거친 줄기는 여린 풀과 꽃들과 심지어 나무들까지 칭칭 감아 올라가면서 항복을 받아내고 있다.

나는 음력 9월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먹을 복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어른들의 덕담을 들으면서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내가 살고 움직이는 곳의 동선은 신기하게도 언제나 먹거리가 풍성했다. 이 숨이 턱턱 차오르는 길에서도 자연이 주는 조건 없는 적선이 길손을 기다리고 반긴다. 산길을 걷는 곳곳에는 빨갛게 익은 산딸기와 까맣게 물든 오디가 오감을 자극한다. 두 팔을 쭉 뻗어 산딸기와 오디를 땄다. 체면도 없이 주섬주섬 한입에 톡 털어 넣기를 여러 번, 새콤달콤한 맛이 혀끝에 와 닿는다. 배속의 감미로움이 배시시 웃는다.

고래로부터 인간은 자연에 의존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 서구 산업혁명은 문명의 편리성과 풍요에 둔감해 지면서 자연에 빚지고 고마움을 잊고 무분별하게 훼손했다. 생태계 곳곳에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넘쳐나는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들과 손만 뻗치면 잡히는 비닐봉지들이 난무한다. 종이컵 하나, 비닐 한 장이 지구를 얼마나 병들게 하는지 인식마저 애써 무시하고 외면하면서 지구를 오염시키고 동식물의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이 지구를 병들게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건강한 자연을 물려 주어야 한다. 지금 우리의 풍요가 안긴 망각은 후손들에게 깊은 절망감을 안길 것이다.

지구촌 온난화는 어떠한가. 매년 일정한 수치로 상승하는 온도와 열돔은 인간의 이기심이 오염된 환경 속에 얼마나 큰 불행을 초래할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아껴 쓰고 나누어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며 절제했던 ‘아나바다’의 일상을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미덕을 귀찮고 누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지금은 누구 할 것 없이 새것만을 추구하는 물질만능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이기심이 자연생태계의 재앙을 부르는 사필귀정은 진리의 정수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숲을 벗어나자 다시 좁은 농로를 만난다. 무심히 걷던 농로 위에 뱀 한 마리가 떡하니 누워 햇볕에 몸을 말리고 있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자 뱀은 눈치를 챈 듯 스르르 논두렁 안으로 자취를 감춘다. 뱀은 사람을 두려워할까. 오랫동안 인류는 뱀의 상위 포식자였다. 되려 사람이 뱀을 무서워하며 소스라치게 놀라는 건 우리 삶의 공동체에서 이탈한 원죄의 형벌이 아닐까. 유년 시절 나는 첩첩산중 산골에서 자랐다. 논두렁 밭두렁 돌담 사이에서 뱀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뱀만 보면 기겁해서 줄행랑을 쳤던 기억이 선명하다. 어른들은 달랐다. 뱀을 잡아 약제로 쓰기도 하고 팔기도 했다. 그런 어른들을 보면서 인간은 참으로 무지막지한 존재가 아닐까 라면서 의구심을 가지기도 했다.

다양한 생물 종의 스펙트럼에서 바라보면 인간도 자연과 순리로 보조를 맞춘다. 햇빛에 생장하고 달빛에 휘영청 어둠을 사르고 별빛에 언약 같은 꿈을 빚어낸다. 혼자 걷는 이 길에도 수북하게 생각의 이음이 쉴 새 없이 들락거렸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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