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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ㆍ일 교류의 꼭짓점 거제

기사승인 2018.09.21  1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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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목 농소리 고분의 의미 및 국가사적 등재 가능성

농소리 고분 주인은 왜인(倭人)

지난 2004년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가 발굴한 고분 1기에서 거제뿐 아니라 삼한시대 한일 교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들이 쏟아졌다.

대우건설이 시행한 거가대교 접속도로 ‘거제-부산 간 연결도로 민간투자사업’의 일환으로 실시한 시굴조사(2001년)과정에서 발견된 이 고분은 발굴 전까지 봉분의 정확한 성격을 알 수 없어 시굴 당시까진 별 관심을 모으지 못했다.

하지만 발굴 결과는 놀라웠다. 고분의 형태도 특별했지만, 무덤 주인을 가늠할 수 없는 부장품은 지금까지 발굴된 어떤 고분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독특한 자료였기 때문이다.

발굴조사에 따르면 농소리 고분의 주인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 한반도에 진출한 일본 규슈(九州) 지역의 왜인(倭人)이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선 가야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일본계 고분이 더러 발견됐지만, 농소리 고분만큼 일본 규슈지역 석실과 비슷한 고분의 발견은 없었다.

삼한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한반도와 가장 활발하게 교류한 왜 지역인 규슈지역 왜인의 무덤은 농소리 고분 이전에 발견된 사례는 옛 백제지역이 대부분이었다.

더구나 왜계고분 대부분이 신라나 가야의 영향을 받은 반면, 장목리 고분의 경우 신라나 가야의 유물 없이 왜계고분 특징만 고스란히 담고 있어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또 농소리 고분 석실 내외부에서 발견된 원통형토기와 철모(철제 창), 삼지창의 경우 의례 흔적으로 보이는데 이는 일본 후쿠오카의 반즈카 고분에서 발견된 철도자(작은 쇠칼)과 같은 형태로 묻혀있었다.

무덤 주인은 왜 거제 땅에 묻혔나

일본과 우리나라 학계에 따르면 농소리 고분의 주인은 고분축조의 연속성, 고분의 외형, 매장시설, 부장유물의 상관관계에 따라 기존 남해안 일대에서 발견된 정주왜인이나 재지수장층의 고분과 달리 일본 큐슈지역 출신의 무장세력 왜인으로 보고 있다.

삼국시대 왜가 한반도에 군사적 목적으로 진출한 주요 사건은 모두 3차례로, 첫 째는 5세기 초 광개토대왕비에 기록된 가야와 왜 동맹군의 신라 공격, 두 째는 6세기 중반 백제의 중흥을 꿈꾸며 남부여를 세운 성왕이 전사한 관산성 전투, 세 째는 7세기 백제 멸망을 이후 백제부흥운동을 지원한 백마강 전투다.

농소리 고분군의 고분의 축조 시기는 5세기 말에서 6세기 중엽까지 추측돼 무덤의 주인은 백제 성왕 및 대가야와 교류했던 세력으로 추측된다.

고분군에서 발견된 대가야산 공부단면 팔각형 철모와 백제산 대장식구가 무덤의 주인이 백제와 관련이 깊은 인물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분에서 일본 열도산 경갑과 괘갑 등 갑주와 대도, 철모, 철촉과 같은 무기가 발견된 것은 무덤의 주인이 백제와 왜와의 교섭에서 군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농소리 일대는 큐슈지역에서 배가 건너올 경우 꼭 거쳐서 가는 하는 곳으로 경남 남해안 일대를 그물망처럼 이어주는 꼭짓점의 역할을 수행한 지리적 요충지였다.

거제지역은 6세기 가야와 신라의 각축장이었던 낙동강과 남강 일대의 내륙지역에 비해 주변 정세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고, 때문에 학계에선 무덤의 주인이 가야와 신라의 영향력 없이 고향인 일본 큐슈지역의 특징을 고분에 담아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고분이 단독으로 축조된 것은 무덤 주인이 단순교역을 목적으로 한 인물이 아닌 중요한 목적에 따라 왜(倭)가 직접 파견한 전문 인력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료라는 의견도 있다.

또 무덤의 주인이 생전에 활동했을 시기와 석실에 매장될 때까지의 시간을 고려하면 무덤을 만든 왜인들이 한반도에서 활동한 시기는 6세기 전엽∼중엽 무렵으로 2세대를 넘기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며, 이후 가야국의 국력이 쇠락하는 시기에 관련 업무를 정리하고 본국으로 귀국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농소리 고분 발굴의 의미와 국가사적 가능성

농소리 고분에서 발견된 왜계유적 및 유물은 고대 거제지역과 일본의 교류 활동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이는 옛 거제 땅에 세워진 독로국(瀆盧國)이 변한의 나라들 가운데 가장 밀접하게 왜와 교섭한 곳이라는 증거로 거제-독로국설에 무게를 더한다.

거제지역에서 발견된 농소리 고분, 아주동 고분, 둔덕기성, 옥산금성, 다대산성 등의 다양한 고대 유적들은 거제지역이 삼국시대 초기 가야권에 속했다가 후기에는 신라권으로 편입돼 통일신라시대까지 지속된 변한 독로국의 후예라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거제 남부지역에 해당하는 남부면이나 일운면 일대에 농소리 고분과 유사한 성격의 고분이 발견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거제 최북단에 위치한 농소리 고분은 마산, 진해, 고성지역으로의 진출하기에 적합한 곳이지만 남북 방향으로 긴 거제의 지형적 특성상 거제 남쪽 지역을 거점으로 한 세력 구축해야 사천, 여수, 순천 방면으로 진출할 수 있고, 가야지역을 동-서로 분리해 효율적인 교류 활동을 할 수 있어 보여서다.

거제시는 고대 한?일 교류의 꼭짓점 역할을 했던 농소리 고분을 경상남도 지정 문화재 등재에 이어 국가사적 등재까지 계획하고 있다. 농소리 고분이 가진 역사적 배경이 한?일 교류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다.

농소리 고분은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왜계고분군과 달리 독립적인 왜계고분이라는 점에서 다소 사적 지정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오히려 독립고분 축성은 농소리 고분과 무덤 주인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농소리 고분이 사적이 되는데 둔덕기성의 국가사적 등재 과정처럼 고분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학술대회가 뒷받침된다면 머지않아 ‘국가사적 농소리 고분’을 볼 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자료 =  거제장목고분 조사연구보고서 <2006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경남 남해안 일대 倭系石室 被葬者의 성격과 역할 중 장목고분 <2015 세종문화재연구원>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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